노인들의 깊은 주름살 속에는 청량고추 한주먹을 한꺼번에 씹는 인생의 매운맛이 숨겨져 있다. 아버지의 굽은 허리, 휘어진 어깨에도 벼랑을 타고 오르는 헉헉대는 숨소리가 있다. 어머니의 굳은 살 박힌 손가락에는 견디고 견디며 참아 온 인내의 핏줄이 벌겋게 숨겨져 있다.
그렇다. 나이라는 것은 그냥 먹는 게 아니다. 아버지 어머니도 그냥 되는 게 아니다. 저 높은 나무 위에서 떨어져 뼈를 다치고, 발목이 휘어지고, 피가 흐르는 곤혹스러운 세월의 가파른 바람을 다 맞아야 나이가 먹고, 어른이 되고, 노인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꿈과 이상과 미래에 도전하는 일도 이와 같다. 우리가 저 산 너머를 넘기 위해서, 우리가 저 높은 나무를 오르기 위해서, 우리가 저 넓은 강을 건너기 위해서 가장 버려야 할 것은 ‘쉽다’는 안이한 생각이다. 살아보면 그렇다. 세상 살다 보면 개울하나도 쉽게 건너는 법이 없다.
스스로의 힘으로 건너고 오를 때, 그것이 바로 도전정신이다. 도전은 남의 힘을 빌릴 수 없다. 내 발로, 내 의지로 걸을 때 우리 앞에는 도전이란 출발이 이뤄진다. 통증을 견디는 최대한의 인내도 필요하다. 백 번을 스러져도, 만 번을 일어서는 그 힘 말이다.
산을 오르는 사람들은 목숨을 내 놓는다. 안나푸르나를 오르다가, 히말라야 12좌를 정복하다 타계한 이들의 소식을 우리는 수없이 들어왔다. 도전은 이렇게 위험하다. 죽음을 넘어서는 일이다.
꿈과 이상을 노트에 적어 놓기만 하고, 말만 앞세우고, 아직 의자에 앉아 있거나 침대에 누워있거나 마음만 초조하기만 하다면, 그것은 우리들의 꿈과 이상을 배 곯리는 일이다. 그래서 도전은 실천이다. 도전은 반드시 우리가 그은 그 선까지 도달하지 않아도 좋다. 가고 있다는 것, 결코 멈추는 법이 없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언젠가 그 선에 도달할 것을 믿으며, 이미 그 길을 가고 있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도전중이기 때문이다.
초심이란 말이 있다. 중요한 말이다. 그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하지만, 우리는 어느새 그 초심을 잃곤 한다. 무엇이든 오래되면 관료적으로 변한다. 그것을 조심하지 않으면 초심은 녹슬고 만다.
어느 때였나. 하루에 8시간씩 강의를 하고 다닌 적이 있다. 서울에서 수원으로, 다시 서울로 돌아와 강의를 하고 집으로 가는 길에는 해도 달도 없는 오직 어둠뿐이었다. 그러나 집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아이들을 생각하면 발끝에 성냥을 긋지 않아도 불꽃이 일곤 했다. 하루 종일 말을 하느라 입안에는 구역질나는 썩은 단내가 진동했지만, 강의료를 받는 날에는 웃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대학교수’라고 불리는 게 너무 좋았다. 세상에 눌려 기죽은 우리 아이들에게 ‘엄마가 교수라고 불리는 사람이다’란 말을 간식 주듯 반복했다.
대학시절 오만하기 그지없었던 나는 교육학 과목을 아예 수강하지 않았다. ‘선생’이란 직업이 딱 질색이었다. 누구 앞에서 무엇을 가르친다는 것은 내 인생에선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내 인생은 ‘교수’라는, 그것도 ‘강사’라는 근사한 이름 앞에서 완전히 무릎을 꿇었다.
나는 뛰었다. 서울에서 수원으로, 수원에서 다시 서울로 내달렸다. 시가 어쩌니, 철학이 어쩌니 하며 다녔다. 강의록을 달달 외워 꿈속에서도 ‘학문의 길’을 부르짖고 ‘서정주 시인의 자화상’을 줄줄 흘리곤 했다.
그럼에도 나는 행복했다. 내 인생에 퍼부은 생의 폭설도 살고자 하는 나의 의욕만큼은 내려 누르지 못했다. 내 피는 뜨거웠고, 우리 가족은 눈물겹도록 소중했다. 나는 그 시절 매운 생의 향기를 지겹다고 버리지 않았고, 지금 그 향기는 성경 책속에서 꽃잎처럼 피어난다. 나는 나의 생을 사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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