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올해 스물 두 살 난 자폐 장애인의 엄마다.
아이가 초등학교 4학년 때 발달장애 아이들 엄마들과 함께 기도 모임을 시작했고, 그 모임이 지금껏 이어져 ‘기쁨터’라는 이름으로 장애인과 가난한 가정 어린이들을 위한 주간보호센터, 지역아동센터 등을 만들고 지원하게 됐다. 십년의 세월 동안 힘든 일, 감사할 일도 많았지만 무엇보다 소중한 경험이 있다면 나의 약함, 그리고 다른 이들의 약함을 사랑하게 됐다는 점이다.
일상에서 벗어나 인생의 사막을 만났을 때, 처음에는 부정하고 울고 벗어나려고 하지만 그 사막에 익숙해지고, 사막에도 물길이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는 눈이 생기면 비로소 우리들의 영혼은 진화를 시작한다. 벌거벗고 깨지기 쉬운 자신을 만나고 받아들이고 새로운 자신이 돼야하니까.
그런데 사실, 차분히 돌아보면 약하고 보잘것 없는 바로 그 자리에서 언제나 ‘좋은 일’들이 시작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바로 그 시간, 하느님을 내 안에 초대하는 경험을 하게 되고 그 순간이 바로 우리의 삶이 이어지고 지속되는 놀라운 순간인 듯하다.
오래 전 아이가 아직 어려 장애에 대한 두려운 예감에 시달리고 있을 때, 나는 매일 저녁 아이를 업고서서 끝나지 않는 기도를 했다. 아이가 세상의 많은 즐거움을 누리며 살게 해달라고. 내가 느끼는 삶 속의 기쁨을 이 아이도 같이 누리게 해달라고. 그런데 어떤 의미에서 나의 기도는 완벽하게 이뤄졌다.
아이가 고유의 통로로 하느님과 소통하고 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아무 것에도 더럽혀지지 않는 이 아이의 무구함과 약함은 하느님을 만나는 가장 중요한 조건일 테니까. 걱정의 눈으로 보다가도 아이를 한참 들여다보면 왠지 모를 평화가 찾아온다.
우리가 걱정해야하는 것은 사실,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 불리어가더라도 괜찮은 영혼의 깨끗함에 대한 문제일지도 모른다. 단지, 육신의 엄마로서 때로는 우호적이지 않은 삶의 강물을 아이가 잘 건너가게 돕기 위해 노력할 뿐이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