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극장가에서는 환호와 탄성이 넘쳐난다. 한국 영화들이 선전(善戰)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1000만 관객 돌파라는 신기원을 이뤄가는 ‘역사적’ 현장을 지켜보면서 나 같은 평범한 사람들의 마음에서도 왠지 모를 뿌듯함이 솟아난다. 답답함으로 가득 차있던 가슴에 청량제가 흘러들어가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첫 아이가 생기면서부터 조금씩 멀어지기 시작해 이제는 연례행사는 고사하고 비디오를 통하지 않고서는 좀체 영화를 접하기 힘든 처지가 되고 말았지만, 지금도 주말이면 캄캄한 방안에 쪼그리고 앉아 텔레비전을 켜놓고 흘러간 영화에 눈길을 빼앗기다 아내의 성화에 이슥한 밤에야 잠자리에 들 때가 적지 않다.
그런 필자이지만 국산 영화에는 크게 눈길도 주지 않았던 게 솔직한 모습이었다. ‘(저예산) 국산 영화가 뻔하지…’ 하는 심정도 없지 않았다. 아니, 크게 작용했다. 그런데 이런 나의 생각이 조금씩 무너지고 있음을 보는 것도 그리 기분 나쁘지 않은 일이 되고 있다.
국내에서 만들어진, 이른바 방화(邦畵)가 오늘과 같은 성가를 구가한 것은 그리 오래지 않은 일이다. 외국영화 수입자유화 조치가 이뤄진 1980년대 후반 이후 거센 외화의 물량공세로 인해 우리 영화는 한동안 깊은 수렁에서 헤어나지 못하던 때가 있었다.
21세기로 접어들면서야 수렁에서 탈출해 급속한 성장을 이뤄나가고 있는 것이다. 급기야 지난 2004년에는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 같은 한국영화가 1000만 관객시대를 열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영화산업 성장의 바탕에 영화인들을 비롯한 무수히 많은 이들의 피와 땀이 서려있음을 기억하는 이는 많지 않은 것 같다.
한 예로 한동안 뉴스의 머리기사를 장식했던 ‘스크린 쿼터제’란 말은 언제부턴가 사람들의 뇌리에서는 지워진 듯한 느낌이다. 극장이 자국의 영화를 일정 기준 일수 이상 상영하도록 하는 스크린 쿼터를 줄이려는 흐름에 반대해 머리까지 빡빡 민 영화인들이 거리로 나서던 기억은 오래 전 일인 듯 떠오르기까지 한다. 한?미 FTA협정에 따라 지난 2006년 7월 스크린 쿼터제가 146일에서 73일로 축소되는 가운데서도 나는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을 떨치지 못했다.
국산 영화에 대한 평가를 떠나 영화산업은 한 나라의 문화와 그 문화를 이끌어가는 정신까지 집약된 분야이기 때문이다. 스크린 쿼터 축소는 단순히 방화 상영일수가 줄어드는데 그치지 않고 영화산업은 물론 문화계 전반에 적잖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실제 국산 영화 점유율은 2006년 63.8%로 정점을 찍은 후 하락세로 돌아서 2007년 50.0%, 지난해에는 42.1%로 뚝 떨어지는 부진을 면치 못하며 빙하기라는 소리까지 듣고 있다.
단순히 편협한 애국심에서 우리 영화를 더 보고, 국산을 보호하자는 말이 아니다. 그리스 출신의 세계적인 영화감독 코스타 가브라스(Costa Gavras)는 “정신은 판매 대상이 아니고(not for sale), 문화는 협상 대상이 아니다(not for negotiation)”고 했다.
존 웨인이나 게리 쿠퍼 등이 열연한 ‘서부 총잡이’는 어린 시절 우상이었다. “쉐~인~, 컴백~” 지금도 쉐인을 애타게 부르는 아이의 목소리가 내 것인 양 영화의 마지막 장면과 겹쳐 떠오른다.
그런 서부영화에서 백인의 인디언 사냥은 정의였고, 자신의 영토와 생존을 지키려는 인디언의 저항은 무조건 악이었다.
이처럼 영화는 역사와 의식까지도 수출하는 것이다. 영화에 문외한이면서도 분수없이 영화 얘기를 꺼낸 것은 이렇게 철모를 때 지은 죄(?)에 대한 후회와 반성 때문이다. 나 때문에 괜한 욕을 먹은 인디언 아저씨께 죄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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