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대로. 한 치의 양보도 할 수 없는 출근길. 자동차들이 거의 틈조차 없이 서서히 기어가고 있는 아침 8시20분이었다. 나는 9시 강의를 앞에 두고 마음을 태우며 운전을 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하늘을 나는 자동차로 변신하고 싶은,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자동차를 그대로 버리고 달려가고 싶은 욕망을 인내심으로 누르며 가고 있었다.
그런데 나보다 더 바쁜 사람이 있었는가 보다. 아니, 그 시간에 바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흰색 자동차 한 대가 내 차를 교묘히 피해가며 새치기를 하는 것이었다. 나도 오기가 있어 영업용 차량이 아닌 자가용에게는 좀처럼 양보를 해주지 않는 편이다. 그날 따라 이 새치기 차는 내 기분을 왈칵 뒤집어 놓고 말았다.
그전까지 내 머릿속은 곧 해야 할 강의 내용으로 분주했었다. 그러나 어느새 강의 내용은 사라지고 온통 그 흰색 차를 다시 앞지르겠다는 생각으로 가득해졌다. 아차 하면 추돌사고를 일으킬 뻔 했다. 나는 너무 화가 나 있었고 창문이라도 열어 고함이라도 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일전에도 이런 경우가 있었다. 그때는 화를 버럭 내며 차창을 열고 운전자와 눈을 마주쳤는데, 운전자가 활짝 웃으며 ‘어머, 신달자 선생님 아니세요?’라며 웃는 것 아닌가. 나는 순간 얼굴이 붉어져 ‘안전 운전 하세요’라며 꾸벅 절까지 하고 말았다. 얼굴이 좀 알려지면 이럴 때 불편하다.
마침내 흰색 자동차를 따라잡았다. 창문을 열어 고함이라도 치려는데 차창 너머로 달랑달랑 거리는 십자가가 보이는 게 아닌가. 게다가 운전자 앞에는 성모님도 계셨다. ‘아이고 맙소사! 우리 형제구먼!’ 나는 슬슬 부드럽게 양보를 하기 시작했다. 웃음이 나며 마음까지 편해졌다.
이거야말로 너무 편협한 행동 아닌가. 교우임을 확인하자 화를 삭이고 갑자기 양보의 미덕을 살리다니. 결국 교우면 용서가 되고 아니면 용서할 수 없다는 것인가. 예와 법은 다르고, 인간적인 것과 신앙적인 것은 다른 법이다. 그러나 나는 이상하게도 그 성모상 앞에서 화의 깃발을 내리고 말았다. 그건 아마도 꼭 교우라는 이유보다는 내가 십자가와 성모상 앞에서 약해진다는 뜻일 것이다.
언젠가 김동길 교수님의 칼럼에서 ‘가톨릭 신자들이 웃긴 이유’를 본 적이 있다. ‘내 탓이오’ 스티커를 자동차 뒤에 붙이고 다니는 것은 결국 남의 탓으로 돌리게 된다는 것이다. 오히려 운전대 앞에 붙여야 자기 탓으로 돌리고 반성한다는 말씀이었다. 그 글을 보고 한참을 웃었다. 남들 보라고 붙이는 스티커는 ‘나는 잘못이 없다’는 말과 같은 뜻인데, 생각할수록 일리가 있다.
우리는 자신의 안전을 기원하며 차 안에 십자가나 성모상을 모시고 다닌다. 그러나 그걸로 그쳐서는 안 된다. 성모님을 모시고 다니는 사람은 양보도 잘해야 하고, 교통법규도 지켜야 한다. 먼저 웃고, 또 미안하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저 운전자는 차 안에 성모님을 모시는 사람답게 매너가 아주 좋다’는 말을 들을 수 있게 행동해야 한다.
안전운전과 무사고만을 바라며 성모님을 차에 모시고 다니는 것은 너무 속 보이는 일이다. 차에 성모님을 모시고 매너 없게 운전한다면 성모님께서는 무척 속상해 하실 것이다. 그건 성모님을 욕보이는 일이다. 잘 하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잘못하지는 말아야 한다. 기본은 지키자는 말이다. 그래야 성모님을 부르며 기도할 자격이 생긴다. 그게 최소한의 교우로서의 자격이다.
나 역시 그런 자격조차 없는 사람이다. 그러나 내가 두 손을 모으고 잘못을 뉘우치며 무릎 꿇고 기도를 드리면 성모님은 또 웃으실 게다. 아니, 나는 지금까지 화를 내는 성모님을 본적이 없다. 때로는 그것이 너무 가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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