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에서 살다 5년 전 일산 근교의 전원주택으로 이사한 후 내게는 특별한 즐거움이 생겼다. 꽃밭 뿐 아니라 채소 몇 가지를 심은 텃밭도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디스크 수술을 한 후 욕심껏 마당일을 할 수 없어 이맘때쯤 되면 꽃밭과 텃밭은 풀이 무성해지기 마련인데, 오늘은 큰시누님과 시어머님께서 오셨다. 거동이 불편하신 어머님께서는 그저 왔다갔다 하실 정도지만 텃밭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뻐하신다.
건강해지신 어머님을 보노라니 감개가 무량해져 어머님께서 입원하셨던 지난 봄을 떠올렸다. 지난봄, 집 앞 벚나무가 피었다가 지는 동안 여든 넷의 우리 어머님은 입원을 하셨다.
입원 초기에는 산소자리를 알아보라고 재촉을 하셨지만 가족들이 걱정하고 병원을 옮겨 꾸준히 치료를 받으신 덕에, 퇴원하실 때는 고운 봄자켓을 장만해야겠다고 하셨다.
어머님이 입원하셨던 병실에는 여든 넘으신 할머니들이 세 분 계셨는데 그중 한 분이 기억에 남는다. 할머니는 서른 여덟에 혼자 되셔서 다섯 남매를 키우시느라 고생을 많이 하셨다고 했다.
폐기능이 좋지 않으셨지만, 주변에는 젊은 사람들이 말씀 한 자락 들으려고 옹기종기 모이곤 했다. 글을 모르면서도 어찌나 이야기를 재미있게 하시는지 나도 수첩을 꺼내들고 할머니께서 하시는 말씀을 듣곤 했는데, 그중 하나가 ‘진도 아리랑’의 한 구절이었다.
“바람은 손 없어도 나뭇가질 흔드는데, 나는 손 둘이어도 가는 임을 못 잡네.”
할머니께서 읊어 주시는 진도 아리랑의 구절에 감동해 ‘꽃이 지기 전 그 꽃을 즐길 일’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지금 그 할머니는 우리 어머님처럼 건강을 되찾으셨을지.
그 봄이 지나고,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고 있는 오늘, 어머님과 함께 하는 이 시간이 참 소중하다. 이 시간이 가기 전에 이 날들을 즐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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