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입시생 자녀를 둔 가정은 일년 내내 온 가족이 수험생이 된다고들 한다. 수능을 두 달도 안 남겨둔 지금, 하지만 우리 가정은 1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반 다를게 없다. 무디고 게으른 아빠 탓이 크다. 큰 아이의 성적이 썩 내키지는 않는다. 하지만 어쩌랴. 엄마의 정보력과 아빠의 경제력, 당사자의 노력이 성적을 가르는 3대 요소라는 요즘 세상에 우리 아이들은 그나마 감지덕지라고 생각한다.
큰딸 아이를 보면 늘 가슴 한구석이 아린다. 몸에 남겨진 지울 수 없는 흔적 때문이다. 고3 수험생인 큰 딸은 5살 때 ‘심방중격결손’으로 심장수술을 받았다. 요즘은 의료기술이 발달해 수술자국이 크게 남지 않지만 당시만 해도 개심(開心) 수술이어서 아이의 오른쪽 가슴엔 지금도 흉터가 남아 있다.
수술 하루만에 중환자실에서 휠체어를 타고 나오던 그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어린 것이 마취에서 깨어날 때의 그 통증을 어떻게 견뎌냈을까. 팔에 꽂힌 링거를 보며 쑥스럽게 웃던 그 모습에 우리 부부는 반가움과 고마움의 눈물을 흘렸었다. 이젠 아빠 키를 넘볼 만치 훌쩍 커버린 아이를 보며 ‘궁댕이(엉덩이)가 방탱이’라며 놀린다. ‘아빠 배나 넣으세요’라며 반격하는 아이에게 난 ‘그래 더 이상 아프지 않고 잘 커줘서 고맙다’며 속으로 되뇌인다.
연초였던가, 큰아이를 보면서 문득 스치는 한 가지 생각에 섬뜩함을 느꼈다. 아이의 선천성 심장병을 태아 때부터 미리 알았다면…생각이 여기까지 미친 것은 당시 다시 불거진 ‘태아 성감별 고지(告知)’를 둘러싼 논란 때문이다.
정부는 지난 1월 임신 7개월 후부터 의사가 산모에게 태아의 성별을 알려줄 수 있도록 의료법을 개정하고 내년부터 시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행 ‘태아 성감별 고지 금지’가 ‘헌법불합치’ 판결을 받은데 대한 후속 조치다. ‘태아 성감별 고지 금지’라는, 세계에서 유래를 찾기 힘든 희한한 법이 만들어진 것도 그만큼 남아선호 사상이 깊은 우리 사회에서 낙태가 성행했기 때문이다. 여기엔 태아의 성별을 알 수 있는 초음파라는 영상장비의 발달도 한몫했다.
인체에 해가 없는 초음파는 임신부와 태아에게 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진단장비다. 요즘은 의료기술의 발달로 태아의 모습을 3차원 영상으로 그려낸다고 한다. 참 놀랍고도 고마운 일이다. 그러나 태아 초음파가 가져다준 축복도 여기까지다. 비극은 초음파가 태아의 기형을 찾아내면서 시작됐다. 태아 초음파는 임신 초기부터 태아의 심장이상 등 각종 선천성 질병을 잡아낸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태아의 기형을 조기에 발견해 치료할 목적으로 발전된 의료기술이 임신부로 하여금 태아를 낳을까 말까를 고민하게 만들었다.
산부인과 의사들에 따르면 초음파로 태아의 기형을 알게 된 산모의 상당수는 이후 병원에 오지 않는다고 한다. 낙태를 했을 것이란 얘기다. 선천성 심장병은 인종이나 경제수준과 상관없이 인구 200명당 1~2명꼴로 발생하지만, 요즘 그만한 수의 심장병 아기를 보기 힘들다고 의사들은 말한다. 임신 도중에 사라진다는 말이다. 태아는 살아볼 기회조차 박탈당한 채 생명을 빼앗기고 만다. 기가 막힐 노릇이다.
요사이 큰 아이의 짜증이 부쩍 늘었다. 느긋함이 가장 큰 장점(?)이라 생각했건만, 수능 앞에선 무효인 모양이다. 좀 못하면 어떻고 좀 늦으면 어떠랴. 그러면서도 여기저기서 기억해줄 고마운 분들의 기도가 간절해짐은 어쩔 수 없는 부모의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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