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늦은 저녁, 술자리를 파하고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상황에서 택시에 몸을 실었다. 취기가 온 몸으로 퍼져 눈을 감고 있는데 차 안에서 휴대폰 진동음이 울렸다. 택시기사에게 걸려온 전화였다. 잠시 누군가와 통화를 하며 껄껄 웃던 그 분은 이내 전화를 끊고 내게 이런 말을 건넸다.
“허허 글쎄, 아내가 비도 많이 와서 운전하기도 힘들텐데 족발에 소주 준비해놓을 테니까 일찍 들어오라고 하네요. 이런 맛에 사는 것 같습니다. 행복이 뭐 별겁니까”
택시기사를 쳐다보니 얼굴 가득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순간, 정신이 번쩍 들면서 잊고 지냈던 ‘행복’의 의미를 떠올려 보았다.
“행복은 무엇인가? 난 과연 행복한가? 어떻게 하면 행복해지는 것일까?”
이런 여러 가지 생각들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누군가와 끊임없이 자신을 비교하며 불평불만을 쌓고 사는 건 아닌지. 아주 사소한 일이지만 누구보다 행복감을 느낀 택시기사처럼 진정한 행복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가까이에 있는 건 아닌지. 결국 불행하다는 건 감사와 만족을 모르고 멀리서 행복을 찾으려는 잘못된 판단에서 비롯된 게 아닐는지.
행복의 조건은 무엇일까. 돈? 명예? 예전 자수성가한 한 신자 기업인을 인터뷰한 적이 있다. 어릴 적 찢어지게 가난했던 그 분은 열심히 노력해서 당당히 그 뜻을 이뤘다. 배고픔과 서러움을 겪었기에 자식들에게만은 가난을 대물림하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수십 년간 일에만 매달렸다. 삶의 최우선 순위를 돈과 성공에 두고 앞만 보고 달렸다. 그렇게 강산이 몇 번이나 변한 어느 날, 자신을 되돌아보니 허무하단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최선을 다해 살았지만 채워지지 않는 빈자리를 느꼈다는 것이다.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 성공한 기업가의 입에서 나온 그 말을 솔직히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때 그 분은 인터뷰 말미에 이런 말을 던졌다.
“기자 양반, 돈도 명예도 중요한데 요즘에서야 드는 생각이지만 작은 것에 감사하고 행복해할 줄 아는 사람이 진짜 행복한 사람이 아닐까요. 앞으론 하느님께 받은 이 재물을 많은 이웃과 나누며 참다운 행복을 느끼고 싶어요.”
아이들을 보면 참 행복해 보일 때가 많다. 그만큼 욕심의 대상이 단순해서 그렇겠지만 우는 아이에게 달콤한 막대사탕은 세상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이고, 밤늦게까지 일하고 들어온 아빠 손에 쥐어진 과자 꾸러미도 아이에겐 기다림의 끝에 얻어진 ‘행복봉지’ 그 자체일 것이다. 아빠에겐 자길 보며 달려오는 아이의 웃음이 행복일테고, 그런 모습을 옆에서 바라보는 엄마의 마음에도 행복이 가득할 거란 생각이 든다. 뻔한 얘기일 수 있지만 행복은 이렇듯 작은 것에서 시작해 스스로 만들어가는 게 아닐까.
독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행복에 대해 “사람들은 자기의 올바른 이성과 양심을 닦기 위하여 애쓰는 것보다 몇 천 배나 재물을 얻고자 하는 일에 머리를 짠다. 그러나 우리의 참된 행복은 자신 속에 있는 것이지 곁에 있는 재물이 아니다”라고 정의했다.
필자는 이제부터라도 ‘행복 찾기’에 나서보려고 한다. 아침에 여유롭게 마시는 커피 한 잔에서, 무심코 올려둔 화분에서 피어나는 작은 꽃망울에서, 오랜만에 만난 친구의 따뜻한 다독거림에서…. 마음을 조금만 바꾸면 소중한 행복을 다시 만날 거란 믿음을 가지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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