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9일 화해·나눔·증거의 축제가 열린 여의도공원은 그야말로 ‘땡볕’이었다.
‘시성 25주년을 기념하는 감동의 열기’와 같은 미사여구는 차치하고서라도 9월이라는 가을 날씨를 무색하게 할 만큼 햇볕은 검은머리에 그대로 꽂혔다.
‘땡볕’만으로도 올해 순교자성월은 특별하다.
여기에 한국 순교자 103위가 시성된 지 25주년이나 됐고, 124위와 최양업 신부의 시복시성을 청원 중이니 한국교회가 올해 순교자성월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축제는 질서정연하게, 무사히 이뤄졌다. 많은 신자들이 단체들의 홍보 부스에 들어서서 여러 체험을 했고, 헌혈과 장기기증에도 참여했다.
그런데 이날도 짜증을 내는 이가 있었고, 도시락을 한 개라도 더 챙기려는 이가 있었으며, 먼저 체험하려는 사람들이 있었다. 대다수의 신자들이 밝은 미소로 축제를 함께 했지만 ‘어디에나 그런 사람은 꼭 있듯’ 마음을 속상하게 하는 이들 말이다. 나는 그 사람들을 얼른 미워했다.
이날 장엄미사 강론의 요지는 순교자의 모습을 본받아 ‘서로 사랑하라’라는 말씀을 지키는 것이었다. 순교자들은 ‘신자’라는 표시만 나도 자신의 가족처럼 도왔으며 굶지 않도록, 헐벗지 않도록 서로 사랑했다는 것이다.
언뜻 뇌리를 스치는 것이 있다. 나는 조금 전까지만 해도 시성 25주년 기념미사까지 찾아와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사람들을 미워했다. 그들마저 품어 안는 것이 우리 신앙선조들의 모습이었다. 포졸들에게 음식을 주고, 옷을 해 입혀 잠까지 재웠던 순교자들의 모습에 비하면 잠깐의 미움도 부끄러운 생각이다.
순교자처럼 사는 것은 역시나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잠시라도 이런 생각을 스치게 해준 올해 순교자성월은 ‘25주년’이라는 교회적 의미를 담지 않아도 내게 특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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