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노인이 죽과 빵을 앞에 두고 기도하는 모습을 찍은 흑백사진의 제목은 ‘그레이스’, 즉 은총이다. 사진작가 에릭 언스토롬이 찍은 사진을 그의 딸인 로다가 유화로 다시 그렸고, 그 그림 때문에 아버지가 찍은 사진까지 널리 알려지게 됐다.
이 그림을 보며 나는 딸이 본 것은 그림의 대상인 노인뿐 아니라 아버지의 시선과 마음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런 느낌은 아버지와 딸의 음성이 함께 담겨 있는 노래를 들었을 때 더욱 생생해졌다. 작고한지 오래된 가수, 냇킹콜의 ‘언퍼게터블(잊을 수 없어라)’. 제목처럼 그 노래를 다시 되살린 것은 그의 딸 나탈리 콜이었다. 아버지의 얼굴도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어렸던 딸이 장성한 후 아버지가 불렀던 노래에 자신의 음성을 덧입혀 듀엣처럼 느껴지게 만들었던 것이다.
이 그림과 노래가 생각나는 이유는 명절이 다가오기 때문이다. 친정아버지는 5년 전 간암으로 돌아가셨다. 그 후 명절이면 아버지가 얼마나 그리운지 가슴이 아프다.
아이의 장애를 알게 된 후, 아버지는 매일 저녁 전화를 하셨다. 힘겨워하느라 아무것도 돌아볼 여유가 없었던 시절, 그저 안타까운 심정으로 매일 전화를 주셨던 아버지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기에 그때는 그 전화가 위로가 된다는 생각을 못했다.
매일 똑같은 질문, 똑같은 대답이 슬프고 속상하기만 했다. 그런데, 정말 한번만 더 전화 통화를 할 수 있다면…. 아버지 사진을 십자가 밑에 두고 매일 이야기를 나누며 그 목소리를 그리워한다.
나는 이제 안다. 딸이 살아있는 한, 아버지는 살아 있다는 것을. 그것이 그 사람을 내 삶 속에서 다시 살게 하는 길이자 그 사랑을 이어가는 길이라는 것을. 우리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헤어짐’이 우리가 해야 하는 사랑의 또 다른 얼굴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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