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난 부자(富者)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아들만 넷을 키우고 있어 나까지 오부자(父子)니 곧 가족 얘기를 하려는 참이다(이런 나를 두고 富者라고 하는 이들도 적지 않긴 하다).
부끄럽지만 아이들은 천사요, ‘어른의 거울’이라는 말을 몸으로 체득하기 시작한 게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네 녀석들이 없었다면 이런 부끄러움조차 알지 못하고 살았을지 모를 일이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때때로, 아니 자주 아이들이 축복이라기보다는 짐으로만 다가오던 때가 있었다. 이 시기엔 ‘엄한 아버지’가 당연한 내 몫인 양 아이들을 혼내기도 많이 하고 가끔은 성에 못 이겨 불같이 화를 내기도 했다. 아내는 “애들이 다 그렇지”하는 말로 눙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이런 말조차 귀에 들어오지 않았던 아빠였다. 이런 엄부(嚴父)로서의 강박을 조금씩 허물어내기 시작한 것 또한 네 아이들 덕이니 아이들에게 감사해야 될 게 우선 하나다.
- 아이들에게서 ‘나’ 찾기
한번은 아내가 “셋째가 어쩌면 당신을 쏙 빼닮았냐?”는 말을 꺼낸 적이 있었다. 이유를 들어보니 평소 그 녀석에게서 답답해하고 마음에 안 들어 하는 바로 그 점 때문이었다. ‘허허, 참….’ 겉으론 웃고 말았지만 아내의 조그만 관찰이 가져온 변화는 적지 않았다.
기회 될 때마다 그 녀석이 하는 태를 유심히 지켜보니 아니나 다를까 나의 어떤 부분과 많이 닮아 있음을 깨닫게 됐다. 아이가 지닌 조그만 단점마저 내가 물려준, 나의 한 부분이며 그 녀석은 아직 그것을 의식하지 못한 채 제 나름대로 살아가고 있을 뿐이라는데 생각이 미치자 그간 아들에게 품었던 생각에 미안해지기도 했다. 이 일이 전기가 돼 가끔씩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유심히 관찰하게 된다. 아이들의 어떤 점이 내가 물려준 것인지 찾는 재미도 적지 않다. 요즘은 아이들이 어떻게 놀든 간섭하지 않는 편이다. 순간순간 스스로를 돌아보며 성찰하게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는 아이들이 고마울 뿐이다.
우리 집에서 네 아이의 교육은 거의 아내의 손에 맡겨져 있다. 특별한 게 있는 건 아니지만 아이들에게 강요해선 안 된다는 아내의 교육철학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편이다. 그래서 지금껏 어른들의 ‘필요’에 따라 아이들을 이러저런 학원으로 내몬 적이 없다(물론 네 녀석 학원 보내려면 등골 빠질지 모를 일이다). 자기들이 꼭 해보고 싶다는 수영이나 바둑, 미술 학원에 얼마간 보내본 적이 있지만 그도 식상해 하면 억지로 보내지 않는다. ‘시작했으면 끝을 봐야지’ 했던 과거에 비하면 천지개벽인 셈이다.
한 녀석 한 녀석 재능이 다 달라서(같은 부모에게서 낳는데도 정말 놀라울 따름이다) 누구는 바둑에 재미를 붙여 다니는 학원에서 1등을 하는가 하면 어떤 녀석은 창작만화 그리기로 생각지 않은 상을 타오기도 한다. 손재주가 좋은 아이는 종이접기 카페를 운영하며 손수 만든 작품을 올리기도 한다. 일부러 시키거나 가르쳐준 것도 아닌데 부모가 생각지도 못한 일들을 해내는 모습들을 볼 때면 ‘아이는 어른의 스승’이란 말에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질 때가 적잖다.
아이들이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삶을 살며 그 속에서 행복해하는 모습을 볼 때 나 또한 행복해진다. 부족하기만 한 아빠를 세상에서 제일 좋다고 여기는 아이들, 나는 그래서 아이들과 더 친해져야 하고 그들에게서 더 배워야 한다. 이것이 하느님께서 아이들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축복의 메시지가 아닐까. 그런 기쁨을 주는 아이들에게 감사해야 할 일이 또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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