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은 나의 힘, 나의 노래” (시편 118)
서품을 얼마 앞두고 일주일간 제주도를 무전여행 한 적이 있습니다. 입은 옷과 신발 외 아무것도, 그 누구도 없이 떠난 여행이었습니다. 그 첫날은 밥은 고사하고 잠잘 곳이 없어 늦은 밤까지 헤매다가 한 성당의 교리실에서 책상들을 붙여 침대 대용으로 잠을 청했고 다음 날은 늦은 밤에 문을 닫고 있는 음식점에 들어가 잠자리 부탁을 해 하루 밤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또 귤 밭에서 귤을 따주거나, 고기를 싣고 입항하는 어부들을 도와주거나 관광객들에게 멋진 곳을 안내해주며 식사나 잠자리를 해결하기도 했습니다. 하루는 별들이 너무 아름다워 밤새 별들을 보며 길을 걸은 적도 있습니다.
그렇게 무전여행을 하며 만났던 많은 사람들이 “혼자 여행하면 외롭지 않느냐?” 묻곤 했고 물론 저에겐 여행에 필요한 돈도, 친한 친구들 심지어 읽을 책 한 권도 없었지만 단 한 번도 외로웠던 적이 없었습니다.
가진 것이 없다는 것은 저를 분명 힘들게 했지만 무엇을 먹고, 무엇을 입고, 무엇을 보고, 몇 시에 차를 타고, 돈은 얼마나 남았다는 등으로부터 저를 자유롭게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주님을 느끼고 만나는데도 한결 자유롭게 해주었습니다.
이런 제게 있어 사제가 되어 세상의 여행을 시작한다는 것은 돈 주머니, 식량자루를 벗어던지듯 내 삶의 안정과 편안함을 포기하라는 결단의 요구를 담고 있었습니다. 또한 이 새로운 여행 앞에 흥분과 기대뿐 아니라 불확실성에서 오는 불안과 두려움도 컸습니다.
그러나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께서 나의 힘이고 나의 노래일 수 있다면 주님만이 나의 참다운 여정일 수 있다면 이런 불안과 두려움, 그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아 저의 사제 서품 모토를 시편 118장 “주님은 나의 힘 나의 노래”라고 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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