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맹?” “하맹!”
아들들의 대화 틈틈이 끼어드는 말 가운데 한 토막이다.
‘저게 무슨 소리야?’ 의아해하는 내게 아내가 ‘하느님 앞에 맹세해?’ ‘하느님께 맹세해!’라는 뜻의 줄임말이라는 해석을 달아준다. 함부로 하느님 이름으로 맹세하지 말라는 아빠의 엄명이 만들어낸 조그만 풍경이다. “어허”하는 말과 함께 약간 부라린 아빠의 눈길을 피해 딴 방으로 달아나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보면 웃음을 흘리지 않을 수 없다.
교육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아내의 뜻을 거의 전적으로 따르는(따르지 않고는 달리 뾰족한 수도 없지만) 쪽이지만, 줄임말 수준을 넘어서서 다른 사람들은 도통 알아들을 수 없는 ‘괴물언어’로까지 번져가는 요즘 세태가 적잖이 불만인 나로서는 아이들의 언어 습관에 유별난 관심을 기울이는 편이다. 그런데도 아내마저 아이들과 너무도 자연스럽게 “하맹?” “하맹!”이란 말을 주고받으며 히히거리는 걸 볼 때면 얄미운 생각마저 솟아오를 때도 없지 않다.
아이들을 키우며 아내가 자주 내게 하는 말 가운데 하나가 ‘아이들 기죽이지 말라’는 것이다. 제 아이 기죽이고 싶어 하는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돌이켜 보면 적잖이 반성되는 부분 가운데 하나인 것이 사실이기도 하다. 다른 사람들에게 폐 끼치는 것을 무엇보다 싫어하는 나는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폐를 끼칠 만한 일을 할라치면 아예 ‘원천봉쇄’ 하느라 윽박지르기 일쑤였다. 그것이 과해 매를 들기도 했으니. 늘 아이들에게 미안한 아빠의 마음을 아이들은 알는지…. (아버지란 존재는 늘 가족들 앞에서 부족함을 느끼고 미안해할 수밖에 없는 존재인지도 모르겠다.) 이 자리를 빌려 아이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얘들아, “아빠가 미안해∼”
일전에 어느 책에서 읽은 구절이 떠오른다. ‘아이들의 기를 죽이는 말 10가지’ 가운데 이런 것들이 있었다.
“형(언니, 동생 등) 반만 따라해 봐라.” “네가 원하는 거 뭐든지 해도 돼. 연예인만 빼고.” “너 때문에 내가 못 살아.” “그거 하나 알아서 못 해?” “고작 90점 맞고 뭘 잘 했다고 그래?” “내가 네 말을 어떻게 믿니?”….
나열된 말들을 읽어내려 가면서 속으로 ‘휴, 나는 아니네. (다행이다)’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는데 유독 걸리는 구절이 하나 있었다.
‘그래도 공부가 제일 쉬운 거야.’
이런 말도 아이들에게 상처가 될까 하는데 생각이 미치자 문득 떠오르는 일이 있었다. 공부든 뭐든 아이들에게 강제로 시키는 일이 좀처럼 없는 우리 부부지만 종종 아이들에게 이런 말을 써왔다는 사실, 그리고 그런 말에 아이들이 상처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도 했다.
이른바 ‘좋은 학교’ 가는 것이 지상과제인 듯 돌아가는 세태, 자녀들의 공부를 위해서라면 온갖 정성과 희생은 물론이고 웬만한 부조리와 불법마저도 눈감아 버리는 우리 사회의 모습이 비정상이라고 느끼면서도 공부 문제에서만큼은 통념을 쉬 깨지 못해왔던 게 내 모습이었다. 하지만 나도 아내도 생에 가장 아름다울 수 있는 젊음의 한 순간을 공부에 매달려 살아온 지난날에 한숨지을 때가 적지 않은 게 또 사실이기도 하다. 그래서 아이들에게만큼은 삶이 자신들의 눈앞에 펼쳐진 것보다 훨씬 다채로우며 아름다운 면도 적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애쓰는 편이다.
얘들아, 공부가 힘들지? 힘들 땐 쉬엄쉬엄하렴. 아빠가 기다려줄게. 하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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