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은 무엇일까… 몇일 전 수녀원 새벽미사를 가다가 느티나무와 은행나무 밑에 소복이 내려 앉은 가을잎을 보면서 차를 멈추고 한참을 바라보았다… 여름내 시원한 그늘을 주더니 이젠 자신을 비우는 모습으로 인간을 가르치고 서 있다. 그 모습이 참으로 겸허하고 숭고하다.
가을을 넘어 이제 만추(晩秋)로 접어든다. 내가 사는 이곳 춘천은 며칠 전 성질 급한 겨울눈발이 날렸다. 이런 자연의 변화와 절기를 보면서 그 심오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우리 가톨릭교회의 전례력 안에 숨어있는 심오한 신비와 오묘함에 감탄을 금치 못한다. 봄이 되면 겨우내 죽어지내던 땅과 나무에서 새순이 돋고 그때 즈음이면 부활시기가 된다. 또 나무가 겨울잠을 준비하며 자신을 비우는 가을이 되면 교회력은 위령성월을 지낸다. 연말을 맞아 자신의 삶과 죽음을 다시 한 번 뒤돌아보는 아주 중요한 시기이기도 하다. 문득 2차 바티칸공의회 말씀이 생각난다: ‘모든 전례에는 그리스도께서 현존해 계시다’(전례헌장 7).
이렇게 가을의 낙엽도 아름답지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은 또 뭐가 있을까. 수도원에 입회하기 전 ‘주님, 매일 미사를 할 수 있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를 한 적이 있었다. 그 기도가 이루어져 신부가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 마음으로 본당 새벽미사를 다닐 때 감실 가까이 새벽마다 앉아 계신 두 할머니의 모습이 나는 너무도 거룩하고 아름다워 보였다. 기도내용은 모른다. 그러나 누구를 위해 기도했으랴. 짐작컨대 자식을 위한 기도가 아니었을까… 어쨌든 기도하는 뒷모습이 아름다웠다. 그러던 어느날 미사 중에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또 발견했다. 그것은 예수님을 모시기 위해 줄을 지어 제대 앞으로 걸어가는 발걸음이었다. 그보다 아름다운 발걸음이 또 있을까… 신부가 된 후 어느 날… 미사를 위해 성당에 들어섰는데, 작은 고백실 앞에 형제자매들이 서있다. 그 때 다시 한번 느꼈다. 세상에서 회개하는 영혼을 지닌 자보다 아름다운 사람이 있을까.
세상에는 아름다운 모습이 많다. 자연, 예술, 스포츠 안에서 그 아름다움을 발견 할 수 있지만 신앙 안에서 자신을 비우고 회개하며 기도하는 모습보다 더 아름다운 모습이 있을까 싶다.
며칠 전, 직원들과 하루 가을소풍을 가는데 출발하기 전 버스 안에서 ‘우리 소풍가기 전에 안전한 여행을 위해 기도 한판하고 갑시다’하며 기도를 청했다. 그래봐야 성모송 한 번. 그런데 우리 직원 32명 중 반 이상이 가톨릭 신자가 아니었다. 그래서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그래도 기도해야 한다는 마음과 필요성에 따라 시작을 했다. 기도를 마치고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어 신앙이 없는 직원을 돌아보며 그 어색함을 깨기 위해 ‘기도할 수 있는 우리가 부럽지?’하고 능청을 떨었다. 그러자, 뜻밖에 여직원 한 명이 ‘네’라고 아주 선뜻 부러운 투로 대답을 한다.
그 대답은 나의 어색함을 깨어주기 위함 이라기보다, 정말 부러워 보였다는 느낌이 생생히 살아 있었다. 그렇다. 기도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신앙이 없는 사람을 기도에 초대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너무도 아름다운 일’이다.
기도가 어색하고 그 방법도 잘 모른다고 하는 청소년들에게도 마찬가지일 거란 생각이 든다. 어쩌다 모임에서 한 번이라도 기도를 부탁하면 아이들은 안절부절못하고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슬며시 발뺌을 한다. 심지어는 기도를 써 달라고 한다. 그리고 그런 부담이 늘면 아예 모임을 안 나와 버리곤 한다. 왜 그럴까. 혹 기도의 연습이 안 되어 있는 건 아닐까. 처음부터 기도 잘 하는 사람이 있으랴. 그냥 ‘너의 언어로 자연스럽게 하면 돼’라고 요구하지만 아이들에게는 그 요구조차 힘겨운 것이다.
11월, 위령성월이다. 죽은 이는 스스로를 위해 기도하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의 기도가 더 필요하다, 그렇게 우리의 기도가 필요한 모든 분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얼마나 중요하고 의미 있는 일인가. 돌아가신 모든 분을 위해 기도하는 위령성월. 그 아름다움 안으로 청소년들을 초대하면 어떨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은 기도하는 모습’임을 보여 주는 한 달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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