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한번쯤은 간절히 기도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처럼.
난 중학교 3학년이던 해 부활시기에 세례를 받았다. 그해 초여름 일생일대의 첫 위기가 찾아왔다. 미팅에서 만난 여학생들 가운데 한 명이 가출 후 무단결석을 하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그것도 미팅 바로 다음날. 그 시절에 벌써 미팅을? 하고 의아해 하는 분들이 있을 거 같다. 솔직히 미팅이라기보다는 호기심 어린 만남 정도라고 해야 옳다.
하지만 70년대 중반, 당시만해도 여학생들과 공개되지 않은 장소에서 선생님 허락없이 비밀리에(?) 만난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스캔들이었다. 문제는 미팅에 나온 남녀 멤버들의 이력이 범상치 않았다는데 있다. 친구 따라 강남 간 꼴이 된 나는 물론 예외였다.
한 여학생의 돌발 행동에서 비롯된 사건이 일파만파로 커졌다. 미팅 사실은 금세 탄로났고, 무단결석의 원인 역시 미팅이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내가 다니던 학교에선 긴급 교사회의가 열렸고, 분위기는 심상치 않았다. 그 무렵, 학교가 파하기 무섭게 나는 세례 본당인 대구 계산성당으로 달려갔다. 머리를 파묻고 기도했다. 아주 열렬하게.
“주님 두렵습니다. 제가 정학이라도 받게 되는 날엔 모든 것이 끝장나버릴 겁니다. 한번만 저를 도와주십시오. 그렇게만 해주신다면 앞으로 주님 당신을 위해서 살겠습니다.”
오죽 답답했으랴. 난 결국 지키지도 못할 엄청난 약속을 덥석 하고 말았다.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나온다. 기도 덕인지는 몰라도, 유독 나 혼자만 구제되고 전력(前歷)이 있던 친구들은 모두 유기 혹은 무기정학을 당했다.
수능일을 앞둔 지지난 주일, 아내와 딸 아이와 함께 대구대교구 성직자 묘지를 찾았다. 간간이 뿌리던 빗방울이 묘지에 들어서자 굵은 빗줄기로 변했다. 우산을 쓴채로 짧은 연도를 바쳤다. 서로의 팔짱을 꼭 낀채로. 이날 주일미사 후 묘지를 찾은 것은 위령성월 전대사 요건을 갖추고 싶다는 아내의 바람 때문이기도 하지만 수능을 앞둔 딸 아이를 위해서였다. 하늘은 검게 내려앉았지만 성직자 묘지를 찾는 신자들의 발길은 이어졌다.
묘지를 나오며 입구에 새겨진 글씨에 눈길이 갔다. ‘Hodie Mihi, Cras Tibi’. 오늘은 나에게, 내일은 너에게. 죽은 영혼들이 산 이들에게 들려주는 라틴어 격언이라는 설명과 함께 두 가지를 덧붙인다. 죽음은 늘 그렇게 우리 가까이 있는 것이라고. 죽은 이를 위한 기도는 바로 산 이들을 위한 기도가 된다고.
특별한 지향을 갖고 묵주의 9일기도를 해 본적이 몇 번 있다. 아시겠지만 묵주의 9일기도는 청원의 기도 27일과 감사의 기도 27일 등 총 54일 기도로 꾸며진다. 54일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묵주기도 5단을 한다는게 처음엔 불가능할 것처럼 보였다. 사실 그랬다. 깜박하고 있다가 밤 12시를 넘겨 꾸벅 꾸벅 졸면서 기도를 하고선 “이 기도가 어제 몫인지, 오늘 분량인지” 난감해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한 번, 두 번 거듭될수록 기도도 하면 할수록 는다는 체험을 했다.
언제인가 순교자성월에 부산 오륜대순교자기념관 미사에 참례한 적이 있다. 신부님의 강론중 한 구절이 가슴에 남았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이 영광송 한 구절에 우리 신앙의 지향과 바람이 다 들어 있습니다. 영광송 만으로도 훌륭한 기도가 될 수 있습니다.”
그날 이후로 자주 십자 성호와 함께 영광송을 바치곤 한다. 불안과 답답함이 엄습해올 때, 화가 날 때, 집중하고 싶을 때 짧은 기도 한 구절로 위로와 평화를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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