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천주교회는 1985년부터 교회력으로 연중 마지막 주일과 새해가 시작되는 첫 주일 사이의 한 주간을 ‘성서주간’으로 지내오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신비를 총체적으로 드러내 보여주는 중요한 이때에 성서주간을 제정한 것은 신자들이 매일 하느님 말씀으로 충만하게 살아가길 바라는 사목적 배려에서라고 할 수 있다.
지금 우리 사회에 넘쳐나는 개인주의, 물질만능주의, 생명경시풍조 등 반(反)그리스도적인 흐름들은 하느님 나라를 향한 신앙인들의 여정에서 참으로 올바른 길이 무엇인지 헷갈리게할 만큼 위세가 거세다. 이 때문에 그리스도의 정신과 복음적 가치에 따라 살아가려는 그리스도인들조차 적잖은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는 게 오늘의 현실이다.
참신앙에 목말라하는 그리스도인들은 가난한 이들에 대한 사랑을 가르치는 복음과 오갈 데 없는 서민을 울리는 부동산 투기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하고,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대로 지어졌다는 가르침과 낙태의 유혹 사이에서 갈등한다. 그야말로 잠시라도 정신을 놓으면 유혹의 바다에서 힘없이 좌초할 위험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이러한 유혹과 위험을 물리칠 수 있는 힘은 그리스도의 살아 있는 목소리가 담겨 있는 성경에서 찾을 수 있다. 성경을 제대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는 것이 구원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며, 복음의 가치가 세속의 가치를 압도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세속의 힘이 복음의 가치를 넘어선 듯 보이는 이러한 때일수록 성경은 말씀을 잣대 삼아 살아갈 때만이 올바른 방향을 찾을 수 있다는 진리를 드러내준다. 성경은 생명의 원천이자 샘이며, 신앙의 힘이자 마음의 양식인 것이다.
하지만 성경을 통해 얻은 지식과 깨달음을 단지 머리나 마음속에만 담아두는 것은 그릇된 일이다. 오히려 각자의 삶의 현장에서 구체적 행동으로 드러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도 “말씀을 실행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말씀을 듣기만 하며 자신을 속이는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야고 1,22)라고 가르치고 있다.
성서주간을 지내면서 성경에 담긴 주님 말씀의 진가를 깊이 깨닫고, 이를 유혹의 물결이 넘실대는 이 시대를 헤쳐 나가는 원동력으로 삼겠다는 다짐을 새롭게 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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