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한 11월의 어느 날, 나는 낙엽이 수북이 쌓인 작은 산길을 오르면서 마음이 부풀었다. 내가 오르는 그 길은 나에게 소중한 신앙적 유산을 남기시고 주님의 품으로 가신 부모님의 묘소로 향하는 길이었다. 이 길을 걸을 때마다 나는 하느님께서 섭리하신 부모님의 삶을 묵상하며 감사와 찬미를 올리게 된다.
나는 종종 우리 교회가 위령성월을 제정한 데 대해 감사드린다. 위령성월에는 평소와는 달리 많은 사람들, 특히 아름답게 살다가 가신 분들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고 또한 세상을 너무 슬프고 외롭게 간 영혼들을 기억하게 된다. 얼마 전에 세상을 떠나신 김수환 추기경님의 묘소를 참배하면서도 나는 이 혼탁한 사회, 특히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생명의 문화를 파괴하는 사람들의 행위로 자괴감의 눈물을 흘리신 그분을 기억하였다. 생명을 살리기 위해 당신은 밥이 되셨던 김 추기경님의 아름다운 모습을 그려보면서 같은 길을 걸으셨던 성직자들의 거룩한 모습도 떠올려 보았다. 그런가하면 이 세상에서 가장 따뜻하고 가까워야할 가족으로부터 멀어져 쓸쓸하게 세상을 떠난 사람들, 인간애를 나누며 살 것 같았던 이웃들의 따돌림으로 큰 상처를 안고 떠난 이들의 영혼도 기억하는 것이다.
이 위령의 달에 깊이 묵상할 수 있는 큰 주제가 있음을 복되게 생각한다. 그것은 죽음을 묵상할 때 반드시 전제되어야 할 주제는 생명의 탄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생명의 탄생은 위대하신 하느님만이 섭리하시는 역사이고 바로 이 생명의 탄생으로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죽음을 택하셨고 죽음을 넘어 부활의 영원한 생명을 창조하신 것이다.
죽음을 묵상하는 위령의 달을 보내면서 생명의 탄생, 생명의 소중함을 함께 생각하게 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지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라.”를 다시금 마음속에 새겨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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