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19일, 필자는 좀 색다른 모임의 사회를 봤다. ‘2009년 교회의 날’ 프로그램 가운데 하나인 ‘기독 성소수자와의 만남’ 프로그램이었다. ‘교회의 날’은 바람직한 교회 공동체를 지향하는 개신교 개별 교회와 단체들이 모여 격년으로 치르는 행사이다. 2005년부터 시작했으니 올해로 세 번째이고, 규모는 크지 않지만 꽤 진지한 모임이다.
천주교에도 이처럼 서로 공동체 이상을 나누고, 현실에서 부딪히는 한계의 해결 방안을 공동으로 모색하는 모임이 있었으면 좋겠다. 소공동체 사목 사례를 나누는 소공동체 전국모임이 해마다 열리고 있으니, 따로 모임을 만들 필요없이 주제를 넓혀도 좋겠다.
‘기독 성소수자와의 만남’ 행사 주제는 “우리 여기 있어요!”였다. 교회 안 성소수자의 절박함을 담겨 있다. 교회 안 성소수자는 자기 존재를 드러내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 거의 대부분 목회자는 동성애를 죄악으로 여기고 단죄하는 설교를 한다. 동성애자를 악령에 사로잡히거나 정신병에 걸린 사람으로 여긴다. 그러니 교회 안에서 자기가 동성애자라고 밝히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커밍아웃(성소수자가 스스로 자신의 성정체성을 밝히는 일)하는 그 순간부터 어떤 고통을 겪으리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다. 이날 만남에서는 3명의 동성애 여성이 그리스도인 성소수자로 살아온 자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2명은 개신교 신자였고, 1명은 천주교 신자였다. 개신교 신자는 둘 다 아직 공개적으로 커밍아웃하지 않았고, 천주교 신자만 공개적으로 커밍아웃하였다. 그만큼 커밍아웃은 어려운 일이다.
내가 몸담고 있는 우리신학연구소는 ‘기독 성소수자와의 만남’을 주관한 ‘차별 없는 세상을 위한 기독인연대’(http://cafe.naver.com/equalchrist)에 참여하고 있다. 2년 넘게 이 모임에 참여하면서 직접 성소수자를 만나기도 하고, 이야기나 자료를 통해 성소수자 문제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체험은 퀴어 문화 축제(매년 6월경 열리는 동성애자, 양성애자, 트렌스젠더 등 성소수자들의 축제) 참가였다. 공연 사회자가 했던 “이 자리에는 흔하디 흔한 이성애자들도 와 있다.”는 차별적인(?) 우스갯소리는 지금도 나를 미소 짓게 만든다.
나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 내가 얼마나 성소수자에 대해 근거 없는 편견을 갖고 있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가장 큰 편견과 오류는 성소수자가 근본부터 ‘모든 게’ 나와 다를 것이라는 상상이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성적 지향, 성 정체성을 뺀 나머지는 성소수자도 나하고 조금도 다를 바 없었다. 그들 사회에도 빈부 차이가 있었고, 진보와 보수로 정치 견해도 갈렸다. 곧 그들 사회 안에서도 온갖 문제가 그대로 작동하고 있다.
또 하나 내가 얻은 게 있다면 평소 거의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남성성과 여성성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성애자는 대부분 자기 성정체성에 대해 깊이 고민하지 않는다. 모든 남성과 여성이 남성성과 여성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데도 도대체 그게 무엇인지,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별로 따지지 않는다. 반면 동성애자 등 성소수자는 성정체성에 대해 깊이 고민하기 때문에, 남성성과 여성성에 대한 이해가 훨씬 깊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 또한 남성성과 여성성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곤 한다. 또 동성애자의 사랑 이야기를 들으면서 사랑에 대해서도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가톨릭교회 안에서 성소수자를 만나기 어렵다. 성소수자 인권 단체의 한 조사에 따르면, 조사 대상자인 성소수자의 10% 이상이 천주교 신자였다. 천주교회 안에도 엄연히 성소수자가 존재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들은 철저히 익명으로 존재한다. 신앙인으로서 그들이 겪어야 하는 고민을 들어주거나 나눌 수 있는 모임이나 기구도 아직 없다. 그러니 그들은 있어도 없는 존재, 유령 인간인 셈이다.
예수께서는 야곱의 우물에서 사마리아 여인이 자기 삶에 대한 모든 것을 말하지 않았는데도, 그 여인의 삶 전체를 살피고 보듬었다. 우리 교회도 예수의 그 마음을 닮아야 하지 않을까? 천주교 성소수자가 교회 안에서 당당하게 “우리 여기 있어요!”라고 말하는 날이 빨리 오면 좋겠다. 그날이 오면, 우리 교회의 인간 이해가 더 넓고 깊어지고, 교회 안 인권과 민주주의가 성큼 성숙할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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