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가 ‘정신없이’ 바쁘다. 매일 아침, 몸이 원할 때 일어나지 못하고 자명종 힘을 빌려 억지로 일어난다. 몸이 천근만근이다. 만약 전날 술자리라도 있었다면 몸과 마음의 무게는 평상시의 두 배 세 배가 된다.
그런 몸을 간신히 추슬러 세워, 정신없이 샤워하고, 정신없이 옷 입고, 정신없이 집 문을 밀고 세상 밖으로 나온다. 그렇게 만원버스와 지하철에 이리저리 정신없이 부대끼다 사무실에 도착하면 책상 위에는 예외 없이 수북이 일거리가 쌓여있다. 전화도 이곳저곳에서 걸려온다. 큰 용기 내어 휴대폰 전원을 오프(OFF)하지 않는 이상, 나는 휴대폰 벨소리의 부름에 즉각 반응해야 하는 노비가 된다.
퇴근 시간. 다행히 저녁식사 약속이 없다면 집으로 바로 돌아갈 수 있다. 하지만 집에 일찍 귀가했다고 하더라도 ‘정신 있게’ 쉬겠다는 생각은 접어야 한다. 아이들 문제, 이웃집 문제, 성당일로 역시 정신이 없다. 정신없이 아이들과 대화를 나누고, 성당에 나가 몇몇 단체에 끼어 이리저리 휘둘리다 보면 정신없이 시간이 후딱 지나간다. 그러다 보면 밤 11시, 12시다. 음악 들으며, 책 읽으며 정신적 영적 편안함을 취할 시간이 없다. 자신도 모르게 꿈나라로 빠져든다. 그러다 눈을 뜨면 또다시 정신없는 하루가 시작된다.
정신없이 살아가면서 가끔 만나는 사람들에게 늘 하는 말이지만, 신학생 성직자 수도자들이 부럽다. 진짜 부럽다.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것 자체가 얼마나 큰 행복인가. 가정이 싫고, 아이들이 싫고, 이웃이 싫다는 말이 아니다. 진정으로 가정을 위하고, 아이들을 위하고, 이웃을 위하려면 먼저 ‘정신없이’를 극복할 수 있는 ‘나 홀로 시간’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혼자 있는 것’을 싫어한다. 마치 사회적 동물(social animal)이라는 것을 증명하려는 듯 바쁘게 산다. 그런데 역설적인 것은 그렇게 바쁘게 살아가면서도 외로움을 느낀다는 점이다. 어쩌면 인간 존재 자체가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에 나서야 하는 외로운 존재일지도 모른다. 미국의 사회학자 데이비드 리스먼은 자신의 저서 「고독한 군중(The Lonely Crowd)」에서 내면적인 고립감에 번민하는 고독한 군중이 바로 현대인의 자화상이라고 했다. 철학자 니체는 한걸음 더 나아가 “인간은 외로운 삶이 두려워 사회를 만들었고, 죽음이 두려워 종교를 만들었다”고 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렇게 고독의 두려움에 파묻혀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아니다. 오늘 만약 외로움을 느꼈다면 그것은 ‘허투루 외로움’이다. 그저 심심한 것이다. 무엇이 두려운가. 우리에게는 십자가를 통해 절대 고독을 체험하신 ‘그분’이 있다. 사제가 변화된 성체와 성혈을 높이 들어 올리면, 우리들은 ‘침묵 중에’ 바라본다. 이런 침묵이 필요하다. 혼자 있는 조용한 시간이 필요하다. 대답할 줄 몰라서 침묵을 지키는 자가 있는가 하면, 말할 때를 알고 있어서 침묵을 지키는 이도 있다(집회 20,6). 강요된 고립이 아니라, 능동적 침묵이 필요하다.
트라피스트 수도회 소속 사제로 영성에 관한 많은 저서를 남긴 토마스 머튼은 “침묵은 흠숭입니다. ‘왜’라고 묻지 않고 십자가를 포옹할 때 바로 침묵은 흠숭입니다”라고 말했다. 영혼의 침묵과 승화된 고독은 ‘정신없는 삶’를 ‘정신있는 삶’으로 바꾼다. 당장 오늘부터라도 혼자 있는 시간을 통해 ‘정신 있게’살고 싶다. 그런데…. 마감 시간에 쫓겨 칼럼을 정신없이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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