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때쯤이면 대부분 사람들은 “엊그제 신년을 맞이한 것 같은데 벌써 연말이네요”라는 말을 한번쯤은 하고 또 들어봤으리라. 가정교리를 시작할 때도 부모들은 한결같이 “일 년을 어떻게…”라고 말한다. 그러나 끝날 때쯤 되면 벌써 일 년이 지났다며 아쉬워한다. 최선을 다하며 열심히 살아온 자신보다 좀 더 잘 하지 못한 미련과 후회의 아쉬움이 더 큰가 보다. 그렇다 하더라도 지나간 시간들, 만남들에 감사하며 자신을 격려하고 위로하며 다독이는 연말이 되었으면 한다.
본당마다 차이는 있지만 연말을 앞두고 첫영성체 가정교리 과정도 끝이 난다. 처음 교리를 시작할 때 말썽 피우고 제멋대로인 아이들이 일 년이 지나면 그렇게 달라질 수가 없다. 첫영성체를 할 때쯤이면 하는 짓마다 예쁘고 기특하고 대견하다. “수녀님~~”하고 부르면서 달려와 안기는 아이들과 고사리 같은 손을 꼬-옥 모으고 성체를 모시고 나오는 아이들을 볼 때면 감동 그 자체다.
언제가 들려준 교사의 아름다운 이야기가 생각난다. 연수를 시작하려는데 한 교사가 달려와 반갑게 인사하며 “수녀님! 제 말 좀 들어 보세요”라며 시작한 얘기다. 그리스도왕 대축일에 첫영성체를 했다. 40명이 넘는 아이들을 챙기느라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정신이 하나도 없이 성대하게 미사를 마쳤다. 그렇게 개구쟁이였던 아이들도 이날만큼은 긴장한 탓이었는지 그렇게 의젓해 보일 수 없었다. ‘저 아이들과 헤어져야 하는구나’라고 생각하니 눈물이 앞을 가려 겨우 미사를 했는데 한 아이가 천사 같은 흰 드레스를 움켜잡고 달려와 “선생님 선생님! 저 실망했어요”라고 말했다. 깜짝 놀랐다. 또 무슨 엉뚱한 질문으로 나를 당황하게 할까싶어 은근히 조바심이 났다. 호기심 많은 안젤라였다. “뭐가 실망이야.” 다정하게 안아주며 물었다. “1년 동안 성체 예수님 모시기 위해 열심히 교리공부하고 기도문도 외우고 했는데 글쎄 성체가 아무 맛도 없잖아요.” 한껏 기대를 하고 성체를 모셨는데 아무 맛이 없다는게 이상하고 실망스러워 나름대로 충격이였나보다. 그 순간 당황스러웠지만 “응 그래, 성체는 아무 맛도 없는 거란다. 이제 그 맛을 네가 내야하는 거야. 네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단맛을 낼 수도 있고 쓴맛을 낼 수도 있고 또 아무도 느낄 수 없는 신비스러운 맛을 내기도 한단다. 그래서 성체는 아무 맛이 없는거야”라고 말했다. 그러자 희안하게도 아이는 알았들었다는 듯이 “알았어요!”하면서 드레스를 다시 움켜잡고 신나게 친구들에게 달려갔단다.
순간 교사는 한동안 아무 말도 못하고 멍하니 아이를 바라보다가 정신을 차리고 조금 전의 상황을 혼자서 정리했단다. ‘이것이 하느님 체험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단다. 왜냐하면 이렇게 기막힌 말을 자신은 할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신앙이 깊지도 않고 그렇게 조근 조근 아이가 알아들을 수 있도록 대답할 준비도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자신이 너무나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처음 신부님으로부터 교사 제안을 받았을 때도 세례받은지도 얼마 안되었고 아는 것이 너무나 없어서 선뜻 대답을 못했는데…. 내가 이런 기특한 말을 하다니, 이 말은 분명 내가 한 말이 아니라 성령께서 나를 통해 이 아이에게 들려주신 하느님의 소리라는 것을 느꼈다는 것이다.
교사의 이 체험이 그대로 나에게 전해져 왔다. 이후 나 자신도 성체를 모실 때마다 그 말이 생각나 다시 한번 더 자신을 추스르게 된다. 지금쯤 첫영성체를 마친 우리 아이들은 어떤 맛을 내고 있을까? 신성한 충격을 받은 교사도 그 얘기를 전해들은 나도 묵상거리다. 매일 아무 맛도 없는 성체를 모시면서 과연 나는 어떤 맛을 내고 있는지, 어떤 예수님의 모습을 사람들에게 드러내고 있는지 말이다.
성탄이 얼마 남지 않았다. 하나 둘 대림초가 불을 밝혀 갈수록 우리는 과연 무엇을 해야할까, 성탄을 맞이할 합당한 준비가 되었는지 마음이 조급해진다. 이제 우리의 준비가 어떠하든지 우리 곁에 사랑이신 그분께서 아기의 모습으로 오실 것이다. 준비가 부족했다면 어쨌든 우리 곁에 오신 아기 예수님을 잘 키워야 조금은 면이 서지 않을까? 그렇다면 어떻게 키우는 것이 잘 키우는 것이 될까? 교사의 말처럼 우리 각자가 성체의 맛을 잘 낼 수 있는, 제대로 내는 삶을 살아갈 때 오신 아기 예수님이 무럭무럭 튼튼하게 자라나지 않으실까 싶다.
우리 모두 아기 예수님을 잘 키워내는 새해가 되기를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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