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갈데 없던 그는 결국 10평 남짓한 그의 보금자리에서 목을 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초겨울 바람이 매섭게 몰아치던 지난달 하순, 재개발에 밀려 반쯤 폐허가 되다시피한 임대 아파트 한켠에서 김씨(65)는 싸늘한 주검만을 남기고 고달픈 삶을 끝냈다. “그나마 보상이라도 받고 가야지. 우리처럼 가진 것 없고 서러운 이들이 무얼 어떡 하겠느냐”는 주민들의 말에도 고개만 끄덕였다. 아마도 그는 죽음을 예감했으리라.
용산참사 11개월째. 서울의 한복판 용산에선 아직도 억울하게 죽은 아버지, 아들, 남편의 원혼을 달래려는 이들이 거리를 헤맨다. 그들의 아픔을 더는 보고 있지 못해, 함께 기도하고, 함께 울며 아파하려는 이들이 곳곳에 모여 오늘도 두 손을 모은다.
쌍용차 해고노동자인 최정용(가명)씨에게 올 겨울은 유난히 춥다. 그나마 일자리를 새로 얻은 것만도 다행이다. 밤엔 대리운전을 한다. 하루 3~4시간 자고 벌어야 두 딸 아이 학원비라도 댄다. 그는 “아직 소득도 없이 살아가는 해고 동료들을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고 했다.
성장, 개발, 선진국, 부자 등 구호와 함께 생존의 터에서, 삶의 보금자리에서 밀려나고 쫓겨난 이들에게 돌아온 것은 빈곤의 굴레요 막장 인생이다. 이도 저도 할 수 없는 이들은 죽음으로써 맞섰다.
경기도 안양에 사는 김 양은 올 겨울방학부터는 급식을 먹지 못한다. 아버지는 뇌졸중으로 쓰러지고 어머니는 가출했다. 김 양이 다니는 초등학교에서는 지난여름에 43명이던 무료 급식 신청자가 올 겨울방학을 앞두고는 12명으로 줄었다. 무료 급식 대상자 조사서 양식이 바뀌면서 ‘대상자 유형’ ‘지원 사유’ 등 조사 항목이 늘어났다. 그것도 모자라 ‘관련 서류 확인 여부’까지 요구한다. 이전까지는 담임교사의 상담과 판단에 따라 지원 대상자가 될 수 있었지만 이젠 무료 급식을 신청하기 위해 ‘증명’해야 할 것들이 많아진 셈이다.
서울 망우리에서 태어나 올해 네 살이 된 마히아는 여전히 한국 국적도, 부모를 따라 방글라데시 국적도 얻지 못한 무국적자다. 마히아는 감기를 달고 산다. 건강보험 적용이 안 되는 마히아는 간단한 진료를 받고 일주일치 감기약을 타는데 6만 원이 든다. 미등록 이주노동자인 마히아의 부모는 언제 단속에 걸려 강제 출국당할지 모른다. 이주노동자들에게 의료권·교육권은 희망사항일 뿐이다.
눈물의 결혼식을 올린지 열흘만에 눈물의 장례식을 치러야 했던 박기석·김옥 씨 부부 사연도 있다. 말기 간암 환자였던 박 씨는 지난 11일 오후 경기도 용인에 있는 말기암 환자 무료 요양시설인 ‘샘물의 집’에서 끝내 숨을 거뒀다. 막일로 어렵게 먹고 살다 말기암 진단을 받은 박 씨는 지난달 25일 부인 김 씨와 함께 이곳에 들어왔다. 박 씨는 “마지막 선물로 아내에게 웨딩드레스를 입혀주고 싶다”고 부탁했다. 지난달 30일 이 둘은 늦깎이 결혼식을 올렸다.
부부는 가난한 시골집에서 태어나 중학교도 못마치고 상경했다. 중국집에서 주방장과 종업원으로 만나 2006년 결혼했다. 그해 연말 치매에 걸린 박 씨의 아버지가 숨지자 장례비용 400만 원을 마련하기 위해 월세방 보증금을 뺀뒤 두 아이들과 하루 3만원짜리 여관을 전전했다. 작년 가을, 부부는 밀린 여관비 120만원을 고민하다 동네 공원에서 “같이 죽자”며 다퉜다. 그 광경을 본 주민이 여관비를 대신 갚아줬다. 올 3월 에어컨수리공으로 취직했지만 그나마 안정된 나날도 지난 7월 박 씨가 간암 말기 진단을 받으면서 넉달만에 끝났다.
2009년 세밑,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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