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어렸을 적만 해도 놀이문화가 별로 없었다. 요즘 아이들처럼 학원을 다닌 것도 아니고, 컴퓨터도 없었고 텔레비전도 한정적이었다. 부모님의 영향으로 일찍이 하느님을 믿었던 터라 틈만 나면 성당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기도하고, 운동도 하며 시간을 보낸게 학창시절의 추억이었다.
성탄절이 임박해지면 행복지수가 더 커졌다. 예수성탄대축일인 12월 25일 축하공연을 준비하기 위해 한 달 전부터 성당에 모여 연극이며 노래연습을 했다. 주로 교리교사의 지도하에 연습이 진행됐고, 가끔 성당 강당에서 허기진 배를 채우려고 끓여먹던 라면이나 떡국은 별미였다. 공연 당일은 어떤가. 성탄대축일에는 미사 후 모든 공동체 신자들이 강당에 모여 한바탕 잔치를 벌였다. 주일학교 학생들이 정성껏 준비한 공연도 즐기고 음식도 나누는 정겨운 풍경이 연출됐다. 돌이켜보면 참 어설프고 실수투성이 공연이었지만 모두들 진심으로 웃고 박수치며 기쁨을 만끽했다.
요즘은 퇴색한 감이 있지만 예전만 해도 크리스마스는 종교적인 차원을 떠나 한 해를 마감하며 소중한 가족, 연인, 친구들과 사랑을 나누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크리스마스 장식과 함께 집 안과 거리에 울려 퍼지던 크리스마스 캐럴은 세모의 추위를 녹이며 온정이 넘치게 하는 매개체였다.
오늘날 청소년들은 어떤 성탄절 추억을 만들고 있을까? 최근 한 설문기관의 조사가 눈에 띈다. ‘크리스마스는 어떤 날인가?’란 질문에 청소년 응답자의 대부분이 ‘선물 받는 날’ ‘노는 날’ 등으로 답했다. 또 ‘크리스마스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무엇인가’란 질문에 ‘산타클로스’란 대답이 29.9%, ‘크리스마스트리’라고 답한 청소년이 13.4%였다. 정작, 성탄절의 주인공인 ‘예수님’을 떠올린 응답자는 7.2%에 불과했다.
멀리서 찾을 필요 없이 필자의 자녀들만 해도 아마 크리스마스는 선물 받는 날로 더 크게 인식하지 않을까 싶다. 진정한 성탄의 의미는 모른 채 단순히 물적 선물에 만족하면서. 그래서 올해는 조금 더 뜻 깊게 성탄의 기쁨을 가족들과 나누려고 한 명 한 명에게 성탄카드를 전했다. 한 해 동안 우리 가족에게 베풀어주신 하느님의 크신 사랑에 감사드리고, 내년 한 해에 대한 축복과 기대를 담았다. 성탄카드를 선택한 건 성탄절의 의미를 되새기고 예수님의 탄생을 가족들과 함께 기념하기 위해서다.
부모 세대가 그러했듯이 자녀들에게도 잊지 못할 성탄절의 추억 하나쯤 만들어주면 좋을 듯하다. 단순히 선물 주고받는 이벤트보다 가슴 따뜻한 감동의 시간이 될 수 있도록.
2009년도 막바지다. 올 한 해 우린 어떤 선물을 받았는가? 아니 살아오면서 받은 선물 중 가장 값진 것은 무엇일까? 내겐 결코 사라지지 않는 선물이 있다. 바로 소중한 사람들과의 인연이다. 잠시 스치고 부딪치는 그런 사람이 아닌 ‘진짜 사람’ 말이다. 각기 다른 길을 걸으면서도 마음이 통해 한 길에서 마주치고 그간의 일들을 나누며 서로 다독여줄 수 있는 즐거운 사람.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어릴 적 행복한 성탄절 추억을 만들던 그 때 그 기분, 그 음성으로 외칩니다. “즐겁고 기쁜 성탄절 되시고, 2010년에는 주님 안에서 소중한 사람들과 행복한 추억 많이 만드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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