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전 “가난한 이웃을 위해 봉사하며 겸손한 사제의 삶을 살겠다”고 다짐하며 아프리카 수단으로 떠났던 이태석 신부가 1월 14일 선종했다. 48세의 안타까운 죽음이다.
평소 사람들을 좋아하고 그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했던 이 신부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장례미사에는 약 1500여 명의 조문객들이 참석했다. 또 서울 신길동 살레시오 관구관에 마련된 이 신부의 빈소에는 3일 간 5000여 명 이상이 방문했다고 한다. 장례미사는 눈물바다였다. 가족들은 물론 이 신부를 한번도 본 적 없는 조문객들도 이 신부의 안타까운 죽음을 슬퍼했다.
하지만 유독 한 사람만이 웃고 있었다. 영정 속의 고 이태석 신부였다. 마지막 순간, 고통 속에서도 가족과 동료사제들에게 작은 미소를 보내며 눈을 감았던 것처럼 그는 자신을 사랑해준 이들에게 미소로 위로하고 있었다.
이태석 신부는 말로만 사랑을 외치는 그런 선교사가 아니었다. 말보다는 행동으로 먼저 하느님 말씀을 섬기고 사랑을 베풀었다. 그가 10년도 안 돼 절망의 땅에서 사랑과 희망의 꽃을 피운 것만으로도 그의 노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짐작하고 남을 일이다.
이때문에 그가 남긴 미소는 의미가 크다. 안정된 의사의 길을 포기하고 어릴 적부터 가슴 깊이 새겼던 선교사의 꿈을 이루고자 선택했던 아프리카 행.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수많은 사람들, 그 모든 것이 하느님께서 주신 은총이자 사랑임을 감사한다는 의미가 미소에 담겨 있는 듯 보였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자신이 이루지 못한 아프리카의 꿈을 우리에게 이어가달라는 부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투병 중에도 늘 “빨리 나아 톤즈 마을로 돌아가 아이들을 보고 싶다”고 말했던 그는 더 이상 톤즈에 갈 수 없다. 하지만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미소의 의미를 통해 더 많은 이들이 이태석 신부가 품었던 아프리카의 꿈을 실현하는데 동참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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