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교회에는 엄격한 교회법이라는 제도가 있다. 서양에서는 교회법이라고 하면 ‘절대 규범’이라는 비유로도 쓰인다. 하지만 교황은 예외다. 교황의 말이 곧 법이기 때문이다. 교회법 1404조에는 “최고자(교황)는 아무한테서도 재판받지 아니한다.”고 딱 정해져 있다. 교황 자신은 교회법에 매이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것을 두고, 황제를 능가하는 교황의 전제 정치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달리 볼 수도 있다. 교회법 또한 인간들이 만든 제도이고 보면, 완전할 수 없는 것이고, 더욱이 하느님의 통치를 다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하느님 성령의 움직임을 우리 인간이 만든 한낱 교회법으로만 묶어둔다는 것은 그 자체로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교회법의 이러한 자유로운 정신은 우리가 교회와 사회를 생각하고 설계하는 데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당장 우리 헌법의 바탕이 되는 민주주의를 생각해보자. 웹스터 사전은 demo-cracy는 인민의 지배(rule by the people)라고 설명한다. 민주주의라는 용어는 이것을 추상적으로는 잘 번역했다. 왕이나 귀족이 아니라 인민이 주인인 세상이 바로 민주주의라는 것이다.
그런데 demo-cracy의 진짜 현실적 의미는 단지 왕이 없다는 것이 아니다. demo(머리) 하나마다, 곧 한 사람마다 똑같은 가치가 있다는 데 있다. 모든 성인이 한 표씩 투표하는 1인1표제는 그것을 구체적으로 제도화한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자본주의다. 자본주의 그 자체가 반드시 민주주의와 어긋날 것은 없지만, 둘이 모순되는 일이 있을 때 자본주의가 우월하다. 그리고 1980년대 이래 세계적으로 불어닥친 신자유주의 바람은 인간 개개인의 권리보다는 자본과 주주의 이익을 우선했다. 신자유주의도 이론적으로는 신자유주의가 궁극으로는 전체 대중에게 이익이 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 결과는 극심한 빈부격차, 그리고 1원1표주의라 해야 할 정도로 부자만의 세상이 되고 말았다.
잠시 과거 대공황을 극복했던 케인즈주의로 돌아가기도 하겠지만, 케인즈주의 자체가 신자유주의에 패배했던 불완전한 존재다. 자본주의는 이제 갈 길을 잃은 것처럼 보인다. 세계 각지에서 다양한 대안을 찾느라 혼란세가 이어질 것이다. 전쟁과 기아만 없다면 다행일 것이다.
한국은 곧 G20 정상회의를 개최한다고, 세계를 주도하는 국가 대열에 들어섰다고 자랑할 처지가 아니다. 2005년에 선진국 모임인 OECD의 평균 사회복지 지출률이 GDP의 20%이지만, 한국은 6.9%에 지나지 않았다. 세금은 있는 사람에게 더 많이 거둬서 없는 이의 살림을 돕는 소득 재분배 기능이 아주 중요한데, 한국은 세금을 내기 전에 소득 격차를 나타내는 지니계수가 0.34이던 것이 과세 뒤에도 0.31로 별 차이가 없다.(2007 OECD 통계) 민주주의는 원래 잘 먹고 잘 살자고 시작한 것이다. 민주주의가 생계를 보장하지 못한다면, 생계보장이라는 명분하에 독재가 선이 될 것이다.
이런 마당에 민주정치가 가진 인두세적 성격을 경제에 적용해서, 아예 모든 국민에게 일정한 ‘기본 소득’을 국가가 주자는 기본소득제 같은 주장도 나타난다. 1명이 태어나면 생산유발 효과가 12억 원이라는 최근의 한 연구도 있지만, 사람은 그 자체로 무엇인가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주는 존재로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한다.
뉴턴의 사과도 그렇고 양자역학도 그렇지만, 모든 기존의 체계가 궁극으로 발전해서 더 이상 그 자체로는 새 문제를 해결할 수 없게 될 때, 인류는 새로운 상상력을 허용하고 새 체계를 모색한다. 우리 한국인들은 한반도 남쪽이라는 좁은 지형에 갇혀 살면서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사회주의라는 것에 대해 우리가 가진 좁은 경험으로만 해석해 왔다. 하지만 소련식 사회주의가 1991년에 무너진 뒤, 이제 승리자인 자본주의조차 전 지구적으로 갈 길을 잃은 이 상황에서, 우리 또한 전 지구적으로, 그리고 창조적으로 이 세 가지를 검토할 때인 것 같다. 이 검토에는 그 어떤 상상 못할 금기도 고정관념도 작용하지 않아야 더 좋을 것이다. 다만 하느님이 창조하신 존엄한 인간을 그 출발점이자 목표로 해서 상상력을 한껏 펼쳐야 할 것이다. 교회법은 그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것을 가톨릭적 상상력이라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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