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의 많은 사람들, 특히 도시인들은 행복하기를 원하면서도 행복이 지속되기 힘들다는 걸 알기에 행복이 찾아온 순간마저 그것을 온전히 누리지 못한다. 행복하다고 느끼는 순간, 그 뒤에 닥칠지 모를 훼손의 시간을 걱정하느라 마음대로 행복해 하지도 못하는 게 나를 비롯한 많은 현대인들의 실상이다. 최근에 그 만성 ‘행복우려증’에서 자유로운 드문 인간형 한 분을 알게 되어 그의 단순명쾌(?)한 행복론에 종종 감염되는 즐거움을 누리고 있다.
어제는 아침부터 꾸물꾸물한 날씨 탓인지 몸이 축축 처지고 하는 일에도 능률이 안 붙어 잔뜩 짜증이 나던 차에 전화가 울렸다. 갯바람을 품은 듯한 쩡쩡한 목소리가 귓전을 시원하게 파고들었다.
“구 선샘요. 하하하. 남해의 J 임다. 그냥 목소리가 듣고 싶어서예.”
전화한 용건이 따로 있겠지만 그는 이렇게 상대방의 마음에 정(情) 도장부터 찍고 본다. 수화기 저편으로 길갓집 차양처럼 돌출된 무성한 눈썹 아래 부챗살 같은 주름을 접으며 ‘티 없이’ 웃고 있는 한 고대인(古代人)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시대불명의 고전복식을 트레이드마크로 입고 다니는 그는 유년기적 천진성, 소년기적 호기심, 청년기적 정열, 중년기적 안정감, 노년기적 원숙함이 자유자재로 발현되는 독특한 인격으로 나이를 논하는 세월 매김이 무의미하게 느껴지도록 하는 사람이다.
한때 건축업을 했던, 교사 출신의 J 선생은 남해의 향리에서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폐교를 인수하여 가진 돈과 시간을 고스란히 바쳐 각종 문화예술 전시와 공연, 전통문화 체험을 할 수 있는 멋진 예술촌으로 탈바꿈시켰다. 그러나 관의 도움 없이 완전히 자급자족 체제로 관광지를 운영하는 일이란 쉬운 게 아니다. 그래서 그는 석재 및 목가구 수입 사업을 병행하며 그 부족분을 채워 나가는데, 주로 중국에서 수입을 하기 때문에 자연히 중국 왕래가 많은 중에 현지 친구들을 많이 사귀게 되었다. 지난 연말 나는 뜻하지 않게 그가 인솔하는 서안 여행팀에 끼게 되어 그를 가까이서 지켜보는 행운을 얻었고, 말로만 듣던 그의 ‘중국통’적 진면목을 확인하게 되었다.
우선 인천공항에서 그를 처음 보는 순간 받은 인상부터가 심상치 않았다. 사극 촬영장에서 순간 이동한 것 같은 ‘고풍당당’한 차림새와 범상치 않은 용모가 세계 어디서라도 시선을 한 몸에 받을 것 같은 개성으로 몹시 튀었다. 그래서 그가 우리의 인솔자라는 걸 알게 되자 속으로 약간 긴장되었다. 괴짜일 것이다, 필시! 저 정도 자기 연출력이라면, 행동거지도 한 ‘기행(奇行)’ 하겠지. 아, 이 여행이 어째 편치만은 않을 것 같은데?
그러나 이 걱정은 기우로 밝혀졌다. 베이징 공항에서 환승 비행기를 기다리는 동안 서로 간에 대화가 시작되자 그는 내가 아는 그 연배의 어떤 남성보다 겸손하고 예의 바르고 친절했으며, 무엇보다 편견이나 고정관념에서 자유로운 활짝 열린 정신을 갖고 있었다. 서안에서 그의 중국인 친구들과 어울리는 동안, 나는 한 반도인의 열린 큰마음과 책임감 있는 행동이 대륙인들을 감동시켜 그들이 그를 진정한 형제애로 대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좀처럼 속을 드러내지 않는 중국인들이 마음을 열게 한 그의 비결은 성(誠)을 다하는 정(情) 즉 ‘성의를 다해 정을 나누는 것’이었다. 그는 상대방이 하나를 베풀면 둘을 보답했고, 한 번 끌어안으면 두 번 안아 주었다. 그리고 이를 방도나 전략 차원에서가 아니라, 스스로 신명이 나서 그리도 즐겁게 했다. 행복 전도사인 그에게 나도 그 비결을 전수받고 싶다. 그래서 그가 평소 염원하듯 ‘세상이 내가 되고 내가 세상이 되어 아직 세상은 살아볼 만한 곳이라는 것을 전하는’ 일에 동참하게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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