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하였느냐?” 2003년 조선남녀상열지사를 다룬 영화 ‘스캔들’의 포스터에 등장한 짤막한 문구이다. 이 영화 포스터에서는 “통하다”라는 동사가 성적 코드를 담은 언어로 쓰여 사람들의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는데, 사실 이 말은 일상생활 속에서 “마음, 의사나 말 따위가 다른 사람과 막힘이 없이 소통되다”라는 뜻으로 흔히 쓰인다. 이를 한마디로 이야기하면 ‘의사소통’ 또는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 말뜻으로 볼 때 ‘통함’은 사귐과 공동체 형성의 근간이 되며 일치와 협력을 이끌어 내는 필수 요소이다. 그래서 이 ‘통하다’라는 말은 사회생활 안에서 뿐만 아니라 교회 안에서 개인과 공동체의 존립을 위해 매우 중요한 개념이다.
사람과 사람 또는 교회 공동체들 간에 서로 잘 통하면 일치와 화합이 이루어지고, 그 힘으로 어려움도 극복해 낼 수 있다. 그러나 반대로 서로가 통하지 않으면 오해와 불신이 생겨 크고 작은 문제가 발생하게 되고, 개인 또는 공동체가 고립되어 결국 분열의 위험으로 치닫게 된다. 바벨탑 이야기는 하느님처럼 되고 싶어 하는 인간의 교만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소통이 되지 않아 인류가 겪게 되는 비극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오늘을 사는 우리들도 때론 현대판 바벨탑의 비극을 겪는다. 가정에서, 사회에서 그리고 교회 안에서. 이러한 비극을 극복하려면 서로가 진심으로 통하는 가정과 사회 그리고 교회 공동체를 만들어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커뮤니케이션’ 곧 의사소통이 교회의 본질임을 인식해야겠다. 커뮤니케이션 신학은 기본적으로 교회와 신앙을 커뮤니케이션으로 이해한다.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은 그 본질상 완전한 커뮤니케이션의 본보기가 되고, 당신의 창조와 강생구속의 역사는 인류를 향해 이야기하시는 커뮤니케이션의 과정이 된다. 그리고 이 커뮤니케이션의 최고 모범은 예수 그리스도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분은 당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수단과 방법으로, 심지어는 목숨을 바쳐 인류가 알아들을 수 있는 눈높이 방식으로 사랑의 커뮤니케이션을 완성하였기 때문이다. 그 후 교회는 시대에 따라 다양한 방법을 이용하여 복음선포 혹은 선교사명이라는 이름으로 이 커뮤니케이션 소명을 지속해왔다. 그러한 맥락에서 예수회 신학자인 에버리 덜레스(Avery Dulles) 추기경이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신과 친교를 맺도록 설계된 거대한 ‘커뮤니케이션 네트워크’이다”라고 이야기한 것은 강한 설득력을 지닌다. 그리고 실제로 교회는 이러한 커뮤니케이션 과정을 신앙생활 속에서 체험하였고 그 중심 역할을 해왔다. 이는 유럽 사회에서 교회 공동체가 성당을 중심으로 어떻게 지내왔는지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지난 세월 유럽에서는 성당이 하느님께 예배를 드리고 기도를 드리는 거룩한 장소의 역할도 했지만, 한편으로 각종 문화행사의 중심이었고 그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전례를 마친 후 서로 만나 생활 정보를 나누고 의사소통을 하는 장이 되어주었다.
현대에도 교회는 커뮤니케이션의 모범이며 그 장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 확실히 알아 두어야 할 것이 있다. 진정한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지려면, 우선 정보가 일방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구성원이 직접 참여하는 가운데 나눔의 과정을 통해 양방향 의사소통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이다. 최근 들어 많이 거론되는 Web 2.0의 개념이 인터넷 문화 안에서 각광 받고 있는 이유도 바로 이러한 참여와 나눔 그리고 양방향 의사소통 과정을 극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Web 2.0의 개념이 적용된 매체 안에서는 다수의 사용자들이 참여하여 지식과 정보를 공유하고 다듬어 간다. 이것은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기술이자 문화의 새로운 패러다임이다. 어떠한 기술과 매체가 교회의 속성인 커뮤니케이션을 더 활발하게 촉진시킬 수 있다면, 부정적 요소를 최소화하며 이를 적극 수용하여 활용할 수 있는 용기와 지혜가 필요하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문제는 어떤 매체를 이용할 것인가가 아니라 교회가 진정으로 그 본질이며 생명인 ‘커뮤니케이션’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교회 구성원들이 진심으로 서로 통하려는 의지가 없고, 교회가 사회와 통하려는 의지가 없다면 아무리 좋은 도구가 있더라도 그것은 자칫 또 다른 바벨탑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통하고자 하는 의지와 열정, 바로 이것이 교회에 필요하다. 그리고 통하고자 한다면 이를 위한 기술과 매체는 주변에 널려 있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