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강원도 산골의 빈 집에 한 달에 며칠씩 가 지내던 적이 있다. 집주인인 지인이 별장으로 쓰는 작은 연립주택인데, 휴가철을 제하고는 거의 비워두다시피 하는 것을 조용한 창작 공간이 늘 아쉽던 차에 빌려 쓰게 된 것이었다.
동서울에서 세 시간 정도 걸려 도착하는 그곳은 도시의 온갖 공해에 찌든 내 심신의 세포가 오아시스를 만난 낙타처럼 해갈과 휴식을 누릴 수 있는 곳이었다. 늘 뭔가 일거리를 싸들고 갔기에 마냥 빈둥거리다 올 수는 없었지만, 일단 도착 당일만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시간의 여백을 즐겼다. 인터넷이 안 되는 곳이기에 휴대전화만 끄면 외부와 완벽하게 단절되어 평소 ‘갈망하던’ 적요에의 침잠이 가능해졌다. 밥도 먹는 둥 마는 둥 하면서 그 침잠에 탐닉하는 동안 내 안에 서려있던 온갖 잡다한 상념의 연무가 시나브로 걷히면서 머리가 제법 맑아지는 느낌을 받곤 했다.
그러나 밤이 깊어지면서 간간이 들리던 새 소리와 몇 안 되는 이웃의 인기척마저 사라지고 나면 그 집을 둘러싼 정적은 고요하다 못해 괴괴하기까지 했다. 나는 소음 제로의 절대적 정적 속에서는 무슨 일을 하거나 잠을 이루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처음 알았다. 그래서 결국 라디오를 꺼내 음악방송이든 뭐든 조그맣게 켜 놓고 있다가 새벽이 되어 새 소리라도 들리기 시작하면 그때서야 그것을 끄고 잠이 들었다.
그렇게 첫 하루를 보내고 나면 이튿날부터는 라디오와 텔레비전은 물론 휴대폰도 내내 켜놓고 갖가지 소리와 잡음들을 ‘불러들이며’ 지냈다. 도시의 소음공해와 소통부담을 피해 떠나 왔다는 사람이 스스로 그걸 다시 찾아 나선 꼴이라니! 내 모습이 우습기도 하거니와 단 하루도 현대의 문명 장치들로부터 온전히 자유롭지 못하는 모종의 중독증이 느껴져 씁쓸하기도 했다.
도대체 언제부터 이렇게 된 걸까? 한때 캄캄한 시골길을 십리씩 달빛이나 별빛에 의지해 혼자 밤 산책을 하기도 하고, 인적 없는 바닷가 갯바위에 앉아 등대 불빛 바라보며 밤새워 삶의 의미를 고민하기도 했던 나인데…. 그 건강했던 독립성은 다 어디로 간 걸까? 하루도 메일이나 인터넷 뉴스 검색을 안 하면 불안하고, 잠시 혼자서 산책이라도 할라치면 귀에 음악 리시버를 꽂아야 하고, 휴대폰을 두고 외출한 날이면 하루 종일 좌불안석이고, 그것도 모자라 ‘스마트폰’이니 ‘아이폰’이니 하는 첨단 통신기기가 나오면 시대 흐름에 뒤처질까 각종 매체에 나오는 관련 기사를 웬만큼 훑어야 직성이 풀리는, 이 소리?소통 중독증을 어떻게 해야 할까?
며칠 전 텔레비전에서 신개념 네트워킹 시스템 ‘트위터’에 관한 방송을 보면서 내 개인적 차원을 넘어 우리 사회 전체, 나아가 지구촌 대부분이 충분히 자각하지 못하는 사이 이미 불치의 단계에 든 소통 중독증을 앓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방송에서도 지적했듯, 익명의 다중(多衆)이 실시간으로 상호 소통하는 ‘민주적’ 개방성이 순기능 못지않게 역기능의 가능성을 많이 내포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더 큰 문제는 이 소통방식에 중독된 사람의 눈과 귀는 온통 바깥으로만 열려 다시는 제 깊은 속으로 돌려지기 어려울 거라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소통의 원심력을 키워나가는 동안 소통의 구심력을 잃게 될까 걱정인 것이다. 우리가 바깥으로 귀와 입을 열고 수다의 장을 펼치는 사이, 내면과 소통하려는 의지와 힘은 점점 약화될 것이다. 그러다가 우리 안에 와 계신 그분 말씀의 파장을 영영 느껴보지 못한 채 기기(器機)와 시스템의 노예로 덧없는 생을 마치게 되지 않을지, 한번쯤 정색하고 염려해 봐야 하지 않을까.
전자통신 혁명에 매진하고 있는 과학?기술?산업 역군들께서 언짢아하실 얘긴지 모르겠으나, 코헬렛의 표현처럼 ‘온갖 말로 애써 말하지만 아무도 다 말하지 못하는’게 우리 인간의 소통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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