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저물어 가자 인왕산 큰 범이 부하들을 불러 물었다.
“오늘은 무엇을 잡아먹어야겠느냐?”
범에게 잡아먹힌 사람들이 창귀가 되어 범에 붙어 다니며 하수인 노릇을 했다. 그중 범의 겨드랑이에 붙어 다니는 ‘굴각’이란 자가 맨 먼저 아뢰기를,
“뿔도 날개도 없이 꼬리가 머리에 붙어 있어 꽁무니를 가리지 못하는 그런 것이 있사옵니다.” 했다.
범이 마뜩찮은지 눈썹을 찌푸리며 대꾸했다.
“그래, 내가 너희들을 취했던 것도 꽤 오래 전 일이라 그 맛이 잘 생각나지 않는구나. 다만 씹을 것도 별로 없이 뼈가 다글다글한 데다 피도 소금국만 들이켰는지 매우 짠 맛이 났던 것 같구나. 어째서 그 맛없는 것을 또 권한단 말이냐?”
광대뼈에 붙어 다니는 ‘이올’이 나서며 대답했다.
“두령님께서 아직 잘 모르셔서 그렇지 그것이 아주 여러 부류이옵니다. 맛도 제각각이라 잘만 골라잡으면 기름지고 향기롭기가 암소 고기 못지않습지요.”
이에 입맛이 도는지 범이 군침을 삼키며 채근했다.
“어서 일러 보거라. 어디 가야 가장 육질 좋은 것을 잡아올 수 있겠느냐?”
이번에는 범의 턱 밑에 붙어 있던 ‘육혼’이 물어봐줘서 기쁘다는 표정으로 아뢰었다.
“제가 한때 한강에서 사공질을 하며 산 적이 있사온데, 당시 제 배를 타고 강 가운데 섬으로 다니던 자들 중에 금패 찬 자들이 있었는데, 이자들이 지금도 국사를 논하려 날마다 섬에 모여든다 하옵니다. 이자들은 허구한 날 이어지는 갖가지 회합에서 끝없이 말씨름을 벌이며 특정 신체부위를 집중 운동시키니, 여럿에서 그 부위만 취해 모아 오시면 저 서역의 원숭이 골 못지않은 별미가 아니겠습니까?”
이에 범이 낯빛을 고치며 엄히 이르기를,
“네가 망령된 발상으로 내 정기를 흐려놓으려 하는구나. 대저 군자는 작은 것에 집착하여 불필요한 희생을 초래하지 않는 법. 나는 한 번 움직여 열흘치 양식을 구하려 할 뿐이니, 맛은 웬만하되 영양가 충실한 물건으로 꼽아 보거라.” 했다.
굴각이 다시 나서며 조심스레 입을 뗐다.
“두령 마마, 그런 물건이 있긴 했더랬는데 이즈음 와서 그것이 좀….”
범이 눈썹을 치켜세우며 눈을 번쩍이자 굴각은 흐렸던 말꼬리를 다잡았다.
“예, 그것이…. 아니 그자들이 얼마 전 무리지어 저자 한 가운데 공터에 모여 수십 날을 밤새 촛불 켜들고 떠들어 댔던 적이 있사온데, 그 이후 나라의 안정을 위협하는 도당으로 의심받아 의금부에서 그 움직임을 낱낱이 주시하고 있는 터라 최근 들어 그 육질이 변질되었을까 우려되는 바옵니다.”
“그래? 그자들의 어떠한 성질을 그리 높이 사 내게 추천하고 싶었던고?”
“예, 마마. 그자들은 인간 세상에서 선비라고 불리는 자들로, 어진 간과 의로운 쓸개, 나라에 충성하는 머리와 백성을 가엾이 여기는 심장, 기민한 눈동자와 지조 있는 수족을 지녔사온데, 지금은 제 뜻을 마음껏 표현하지 못하는 것에 한을 품어 독이 바짝 오른 상태라 그 몸이 두령님 섭생에 이롭지 못할 걸로 사료되옵니다.”
범이 갑자기 큰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 후 세 창귀를 돌아보며 나직이 일렀다.
“너희 간언을 받아들이겠다. 그 선비라는 물건들은 독이 빠질 때를 기다리마. 오늘은 너희들 살던 농가로 내려가겠다. 좀 거칠긴 하지만 공해가 덜한 건강식으론 너희 부류만한 게 드물지. 자, 가자. 어흥!”
*연암 박지원의 단편 「호질」을 패러디 한 미니픽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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