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이 지면에 올린 내 글이 얼마나 타인의 불행에 둔감했던 것인지 신문을 받아 보고서야 깨달았다. 참척의 비극을 당한 한 교우 부부에 대한 기사를 읽고 나서 나는 가슴을 치며 후회했다. 바로 지난달 18일 러시아에서 비명횡사한 강병길 학생의 부모님을 취재한 기사다. 하필 내가 자식의 졸업과 성장을 자축하며 하느님께 감사를 올린 시점과 맞물려 본의 아니게 그분들의 상실감과 불운을 자극하는 우를 범한 게 아닌가 싶어 두렵고도 죄송스럽다. 글이란 것이 때론 이렇게 자기 주관에 빠져 가능한 경우의 수를 두루 헤아리지 못하고 타인의 아픔을 자극할 수도 있다는 경각심에 펜대를 잡은 손이 사뭇 조심스럽다. 하지만 너무도 어처구니없는 이 비극에 대해 분분한 생각을 멈출 수 없어 조금 풀어내 볼까 한다.
사실 러시아 유학생의 수난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라 2005년부터 6명이 공격 받아 그중 2명이 숨졌건만, 한?러 양 정부의 재발방지 대책 마련에 대한 의지가 얼마나 확고했는지는 의심스럽다고 할 수밖에 없다. 물론 구소련 해체 이후 경제적 불안과 사회적 혼란 속에서 국수주의 및 신(新)나치주의가 러시아 젊은이들 사이에 급격히 세를 불리게 된 후, 인종혐오 범죄는 크게 늘어 한 해 평균 100명 안팎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주로 유색 피부를 지닌 외국인에게 가해진 범죄이기에 혼란기 국가의 자중지란(自中之亂)적 현상이라고 치부할 수도 없어 더욱 경악스럽다.
그러고 보니 몇 년 전 바이칼 여행을 갔다가 민박집에서 만난 젊은이들 생각이 난다. 민박집 친척의 친구라는 청년이 아침부터 보드카를 병나발 불며 모스크바의 유명 마피아 조직원인 자기 형이 줬다는 장전된 권총을 자랑하며 우리 일행에게 자꾸만 접근하려 해 불안에 떨었던 기억이 새롭다. 결국 민박집 주인 바부슈카(할머니)께서 그 청년 일행을 단호하게 꾸짖어 내쫓는 바람에 우리는 다시 평온을 찾았다. 그들은 모두 20대 초반의 시골 청년들로, 어떻게 좀 잘사는 나라에서 온 여행객들과 인연을 만들어 돈벌이하기 좋다는 나라에 한번 진출해 볼까 하는 눈치였다고 나중에 통역이 귀띔했다.
하지만 미래에 대한 그들의 막막한 심정을 헤아리기엔 그 젊은이들의 태도가 너무 이질적이어서 그들의 접근은 무조건 위협적으로 느껴질 뿐이었다.
만약 우리가 사회적, 경제적 혼란에 처해 있는데 그들이 우리보다 처지가 나은 나라에서 여행을 왔다면, 우리 젊은이들도 총 따위를 빼들고 거들먹거리며 교분을 터보려고 했을까? 잘 상상이 되지 않는다. 거기에는 분명 문화의 차이도 있겠지만, 형편이 어려울 때조차도 손님 대접에는 최선을 다 했던 우리나라 사람들의 성향을 생각할 때 민족성 자체의 차이가 아닌가 싶다. 그런 정 많고 친절한 백성의 아들딸인 우리 젊은이들이 세계화의 흐름 속에 밖으로 나가 다른 문화를 배우고 그들과 어울려 보려 했을 때, 너무도 황당한 동기의 범죄에 희생되고 마는 이 부조리의 비극이 어째서 자꾸 되풀이되는 걸까?
고대 그리스에선 재앙이나 재난을 가볍게 하기 위해, 또는 그런 불행을 방지하기 위해 인간을 속죄염소로 삼았다. 심리학에선 파괴적 욕구불만을 무고한 대상에 전가해 불만의 해소를 도모할 때, 그 희생물이 되는 대상을 ‘속죄염소’(scape goat)라 부른다. 속죄염소는 대체로 사회적 약자가 선택된다. 이 관점에서 볼 때 러시아에서 희생된 우리 유학생들은 자신의 미래에 대한 불안과 욕구불만을 품은 극우파 러시아 젊은이들의 속죄염소라고 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좀 더 깊이 살핀다면, 우리나라에서 힘겹게 생존을 일구는 타민족 이주민들에게 우리도 죄의식 없이 차별과 가혹행위를 가해 그들을 속죄염소로 만들고 있진 않았을까? 그 악연의 순환 고리 속에서 우리 무고한 젊은이들이 러시아 등 타지에서 속죄염소로 희생되는 비극이 빚어진 것이라면, 그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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