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4월 4일이 부활대축일이니 사순절도 막바지에 이르렀다.
지금은 신앙인 모두가 숨을 죽이고 모든 생각과 말과 행위에 주님의 수난을 생각하면서 살아가야 할 때이다. 그런데도 요즘 와서 많은 신자들이 이런 뜻 깊은 사순시기를 함부로 여기고 이 시기를 예사로 보내고 있다. 사순절은 해마다 있지만 이 기간만은 몸과 마음을 더욱 깨끗이 하여 우리가 받은 세례의 의미를 거듭 생각해야 하는 기회가 아닌가.
또 평소의 신앙생활을 되돌아보고 진심으로 참회하면서 보속하는 때이기도 하다. 인간은 누구나 나약하여 어제 부지런하다가도 오늘 한없이 게을러지기도 한다. 신앙인 중에는 안 그럴 것 같은 일부 신자, 학력도 높고, 사회적 지위도 높아 누가 봐도 모범 신자 같은, 이른바 내로라하는 신앙인들, 마땅히 본당에서는 대접받고 인정도 받고 있는 신자들마저도 재의 수요일을 예사로 생각하여 이날 성당에 나가지도 않고, 금식이나 금육재 같은 것이 있는 줄도 모르는 것처럼 가볍게 여기면서 전혀 지키지 않는 신자가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
이러면서도 주일미사를 지키고 주일 헌금을 잘 내는 것이 대단한 신심의 발로인 줄 착각하고 어디서나 사람들 앞에서 당당하니 우습지 않은가.
그리고 일부 신앙인들의 이런 한심한 일, 정신적 현주소를 누구보다도 잘 파악하고 있어야 할 위치의 분들도 이런 사연과 실정을 전혀 모른 채(알아도 모른 척하는 건지), 함께 휩쓸려 희희낙락 오늘도 즐기고 내일도 즐기면서 살아가니 더욱 딱하지 않은가. 이런 일이 비록 일부에 한할지라도 이런 풍조가 점점 더 심해지고 있음을 어찌 걱정하지 않겠는가.
우리가 부활절을 훨씬 더 기쁘게 맞이할 수 있는 방법은 사순시기를 어떻게 보내느냐에 달려 있다.
스스로의 온갖 욕망을 철저히 자제하고 극기하면서 절약한 모든 것을 가난한 이웃들, 혹은 이주 노동자나 다문화가정의 어려운 형제자매들을 위하여 어느 정도를 어떻게 썼느냐에 따라 부활절에 느끼고 얻는 환희와 기쁨은 달라지는 법이다.
그리고 이것은 바로 자신의 신앙적 성숙과 쇄신을 이룩하고, 나아가서는 풍성한 영성을 지니게 하는 바탕이 되는 것이다.
교회력을 살펴보면 1년 중 어느 한 주도 의미 없는 주일(主日)이 없다. 그러나 많은 평신도들은 대개 그 주일의 의미조차 모르고 넘기기가 쉽다. 수계신자라도 별반 다르지 않다. 이들은 오히려 몸에 붙은 습관으로 정성이 없는 신앙생활에 젖어 있지 않은지 바로 이 사순시기에 반성하고 참회해야 한다.
우리 주변에 교회를 쉬고 있는 신자는 얼마나 많으며 아예 교회와 담을 쌓아버린 냉담교우는 얼마나 많은가. 이런 분들도 대개는 종교가 뭐냐고 물으면 천주교라고 답한다. 그것까지는 좋다. 문제는 아무 앞에서나 너무 쉽게, 남의 일처럼 교회를 비판하고 험담하는 일이다.
섣불리 교회 맛을 보았다가 쉬게 된 사람들을 우리가 걱정하고 두려워하는 이유의 하나도 이와 같은 부정적인 시각에 의한 선입관적 비판 때문이 아니겠는가. 쉬려면 고이 쉬고 냉담하려면 입을 닫고 있어야 할 텐데 그렇지 못한 게 일부 쉬는 교우들의 실상이다.
그리고 이들이 뿌리는 헛소리는 상상 밖의 부작용을 불러오기도 한다. 특히 신앙생활에 회의를 느끼는 게으른 신자들에게는 화약에 불을 붙이는 효과를 나타내기도 한다.
신앙인라면 누구나 주위에 숱한 냉담교우가 있을 것이다. 사순절이 다 가기 전에 평소의 무성의한 신앙생활을 보속하는 의미에서라도 먼저 열심히 기도하고 평일 미사에 참례하자.
특히 금요일 미사에 참례하여 본당 교우들과 함께 십자가의 길 기도에 참여하자. 14처마다 예수님께 경배하면서 그분의 인간적 수난을 내 것으로 느끼고 아파하고 뜨거운 눈물을 흘려 보자.
이런 사순절을 다 보내고 나면 부활절이 지극히 기쁘고 환희로울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부터는 사순시기의 그 인내와 끈기의 여력으로 평일 미사에 맛들이자.
이때쯤에는 외인 권면이나 냉담교우 권면도 훨씬 쉬워질 것이다. 왜 그럴까. 내 몸에서 풍기는 예수님의 체취, 향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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