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제가 도마에 올랐다. 엄밀히 말하면 ‘사형집행 재개’ 논란이다. 아동 성폭행 등 인면수심(人面獸心)의 흉악범죄가 최근 잇달아 발생하고, 이에 대한 우리 사회의 반응도 안타까움을 넘어 분노하고 있다는 것이 배경이다.
그 와중에 법무부장관이 “사형 집행을 검토중”이라고 밝혔다. 이달 중순 청송교도소를 방문한 자리에서다. “흉악범 격리를 위해 보호감호 부활도 추진한다”고도 했다. 그는 “청송교도소에도 사형 집행 시설을 설치해 사형수를 수용하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한 지시를 두고 “사형 집행을 전제로 한 것인가”라는 기자들의 질문에 “염두에 둔 것”이라고 말했다.
사회분위기도, 언론도 사형집행에 우호적인 듯 하다. 한 단체의 시민 설문 결과, 사형집행에 찬성하는 이가 80%를 넘는다는 보도도 나왔다. 일부 언론은 예외이긴 하지만, 언론의 여론몰이는 더 매섭다.
한국은 지난 2007년 말로 ‘실질적인 사형폐지국’이 됐다. 이는 국제 인권단체가 10년 이상 사형이 집행되지 않은 국가에 붙여주는 일종의 명예다. 한국은 김영삼 정부 말기인 1997년 12월 사형집행이 있은 뒤로 10년 동안 사형이 집행되지 않았다. 당시 이를 기념하는 ‘사형폐지국가 선포식’이 그해 10월 국가인권위원회 등의 후원으로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렸다. 필자도 그 자리에 있었다.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김대중 전 대통령이 불편한 몸을 이끌고 참석해 기조연설을 했다. 워릭 모리스 주한 영국대사가 인사말을 했다. 영국은 대표적인 사형 반대국이다. 당시 대한민국 국민들은 우리나라가 인권국가 반열에 올랐음을 크게 반기고 가슴뿌듯해 했다.
잔치를 벌인지 겨우 2년. 우리 사회는 사형 집행이 언제 재개될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법무행정의 수장인 법무부장관이 “사형집행을 검토하고 있다”고 했고, 이를 위해 ‘사형 집행 시설 설치’를 지시했기 때문이다. 물론 최종 결정은 대통령의 몫이다. 한때 여당인 한나라당에서도 논의됐던 ‘종신형 도입’ 논의는 흔적조차 찾아보기 힘들다.
사형제도를 둘러싼 찬반 주장을 여기서 다시 꺼집어낼 필요는 없겠다. 사형제도는 교회의 가르침과 정신에도 위배된다. 인간이 하느님에 의해 창조된 인간 생명을 어떠한 이유에서든 임의로 죽일 수 없기 때문이다. 교회는 그래서 “사형은 제도적 살인”이라는 사형반대론자들의 주장에 공감한다. 가톨릭 신자인 전임 김경한 법무부장관이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하는지 예의 주시했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국회에서는 의원 과반수가 사형폐지 법안에 서명하고도 제대로 논의조차 하지 않고 있다. 지난 18대 총선에서 당선된 신자 국회의원 수는 79명으로, 전체 의원 대비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쉽지 않다는 것은 안다. 신자로서의 정체성을 어떻게 구현하고 실현시킬 것인가는 또 다른 차원이기는 하다. 그러나 사형제 존폐는 인간생명과 직결되는 문제이고, 가톨릭 신앙의 핵심에 관한 문제다. 그래서 묻는다. ‘금 배지’를 걸고 사형제 폐지에 나설 수는 없는가. 사형제 폐지만큼은 신자 의원님들부터 똘똘 뭉쳐서 속시원하게 밀어붙여 보시라는 예기다.
지난 17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본지가 실시한 대통령 후보 생명의식 설문 결과가 새삼 떠오른다. 설문대상 후보 6명 가운데 이회창, 정동영 의원 등 5명은 모두 사형제를 반대했고, 한나라당 후보인 이명박 후보만 유보 내지 존치입장을 밝혔었다. 본지는 이를 당시 1면 머리기사로 보도했다. 지금 생각하면 못내 아쉽다. 대통령이 사형제 폐지를 선거공약으로 내걸었다면, 대통령의 사형 반대입장이 확고했었다면, 요즘 같은 소란은 없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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