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하는 학술원 제현(諸賢) 여러분!
여러분께서는 영광스럽게도 제가 원숭이로 살던 시절에 관해 학술원에 보고해달라는 과제를 주셨습니다. 여러분의 도움으로 원숭이에서 진화해 인간이 된 저는 그 은혜를 잊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기대에 부응할지 모르겠지만, 최선을 다해 보고 드리겠습니다.
저는 빛조차 발걸음을 꺼리는 깊은 밀림에서 태어났습니다. 전 유난히 호기심이 많은 아이였는데, 어머니께선 늘 그 점을 걱정하셨지요. 결국 그 호기심이 일을 냈습니다. 인간들이 사는 마을을 기웃거리다 붙잡힌 것입니다. 곧 작은 우리에 갇혔습니다. 답답했습니다. 하지만 이내 편안해 졌습니다. 정신없이 이 나무 저 나무를 뛰어 다닐 때는 몰랐는데,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자 세상을 좀 더 넓게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전 인간들을 유심히 관찰하기 시작했습니다.
인간들은 이해하기 힘든 행동을 많이 했습니다. 말로는 평화를 원한다면서도, 늘 싸움을 했습니다. 마치 당시 저와 개의 관계(견원지간, 犬猿之間)처럼, 싸우고 또 싸웠습니다. 그런데 핏대를 올리며 논쟁하면서도 정작 해결책은 내놓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말이죠.
“넌 나를 항상 반대하지.” “난 너를 항상 반대하는 것은 아니야.” “보라고, 넌 또 날 반대하잖아.”
제가 보기엔 인간 사회는 중병에 걸려 있었습니다. 무기력, 좌절, 절망 등 증세가 심했습니다. 문제는 병의 원인이 계층간 갈등, 노사 갈등, 지역 갈등, 종교 갈등, 민족 갈등, 이념 갈등 등 복합적이어서 처방이 쉽지 않다는 점입니다. 판도라가 상자를 열었을 때 세상 밖으로 뛰쳐나왔다는 질투, 원한, 복수심 등도 병의 악화에 한몫 했습니다. 원숭이 배꼽 빠질 정도로 웃겼던 것은, 병을 치료할 의사도 의견을 하나로 모으지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처방이 중구난방입니다. 인간들은 제각기 자신이 전문가라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심지어 다른 의사가 진료하지 못하게 실력행사에 나서기도 합니다. 그러는 사이 수술대 위 환자는 점점 더 위험한 상황으로 치달았습니다.
농사를 이야기하는 사람은 많은데 토지는 황폐해졌습니다. 쟁기를 잡는 사람이 적기 때문이었습니다. 간혹 쟁기를 잡는 사람이 있었지만, 그 사람도 자꾸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너도나도 병법을 말했지만 군대는 점점 약해져 갔습니다. 무기를 드는 사람이 적기 때문이었습니다.
아! 질문을 하시는 분이 계시는 군요. 예? 좀 크게 말씀해 주십시오. 아! 좋은 질문입니다. 인간 사회가 그토록 암울한데 왜 인간이 되길 소망했냐고요?
맞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인간이 되고 싶었습니다. 인간만이 희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판도라의 상자에는 희망도 함께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원숭이였던 시절에는 희망이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희망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압니다. 원숭이 시절에 제가 믿었던 종교에선 먹고 마시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가르쳤습니다. 하지만 인간들이 믿는 그리스도교는 십자가 고통이 부활의 열매를 약속한다고 가르칩니다. 부활 희망을 만끽하기 위해 전 원숭이이기를 포기했습니다. 부활 희망이 있기에 인간이 겪는 고통을 감내해 내기로 했습니다.
할 일이 많습니다. 시간이 촉박합니다. 원숭이였던 시절의 모든 습관을 버리고,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완성된 인간이 되기 위해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늘 겸손한 자세로, 부활 희망을 꿈꾸며 살겠습니다. 그 희망을 ‘지금 여기서’ 실현시키기 위해 땀 흘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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