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을 욕할 때 ‘섬나라’라서 그렇다고 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섬나라는 그리 많지 않으니 어떤 특별한 역사와 문화가 형성될 수도 있겠지요. 뭐, 그래서 일본인들은 과거에 한반도에 사는 우리를 보고 ‘반도 근성’이라고 딱지 붙였지요. 하지만, 남한만 놓고 본다면, 휴전선으로 가로막힌 지금은 위대한 대한민국도 섬나라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예전에야 대륙과 연결돼 있어서 대륙의 ‘호방한’ 기질이 좀 있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60년이 넘게 섬 아닌 섬나라로 살아온 지금, 우리에게도 어느 정도는 섬나라 성질이 생겼을 수도 있겠습니다. 원래 무슨 민족성은 원래 없고, 만들어진 신화라고 봅니다만.
사실, 말이 섬나라지 그다지 좁게만 느껴지지 않습니다. 지난 5년간 연평균 대략 1000만 명의 한국인이 출국했습니다. 육지가 연결돼 있으면 더 많겠지만, 적어도 이렇게 많은 사람이 해마다 해외로 드나드는 현실 그 자체는 결코 외부와 차단된 섬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러고 보면 북한과 굳이 통일을 해야 하느냐는 물음에 딱히 대답하기도 어렵습니다. 하나의 민족은 반드시 하나의 나라만 만들어야 한다는 우주 불변의 법칙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미국 윌슨 전 대통령의 1민족 1국가 주장은 아직도 100년도 안 된, 하나의 정치 구호 수준의 명제일 뿐입니다. 그런데 이 주장대로 하자면 수많은 민족이 뒤섞여 사는 동유럽과 중동, 인도, 아프리카는 앞으로도 수백 년 간 내전과 독립전쟁을 겪어야 할 것입니다. 반대로 미국의 안마당이던 중남미는 포르투갈어를 쓰는 브라질과 스페인어를 쓰는 또 하나의 대국 등 2개로 통일돼야 할 것입니다. 미국에게는 악몽이지요. 음, 소수민족이 많은 러시아와 중국도 별로 원하지 않겠군요. 남북한은 같은 민족이니까 통일돼야 한다는 논리는 국제사회에서는 상황에 따라 동정 받을 수도 있지만, 한반도 운명을 좌우하는 대국들에게는 오히려 위협입니다.
그래서인지 통일의 필요성을 보강하기 위해서 제시되는 논리 가운데 하나가 바로 적정 인구론입니다. 외부에 의존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경제를 운영하려면 최소한의 경제규모가 필요한데, 이것을 인구로 보자면 약 1억 명이라고 하지요. 현재 남북한을 합치면 약 7500만 명이 됩니다. 통일하고 인구가 좀 늘면 될 것 같아요. 통일하면 자립국가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이 숫자는 지난 수십 년간 계속 변해온 숫자입니다. 1980년대에는 7000만 명은 돼야 한다고 했고, 그 전에는 5000만 명이라고 했지요. 과거의 기준으로는 현재 남한 인구 5000만 명은 굳이 북한과 합치지 않아도 자립 경제를 위한 내수를 충분히 확보할 수 있답니다. 하지만 현실은, 현재 남한은 대외무역의존도가 2000년대 들어 급격히 증가해 2008년에 70%, 2009년에 90%가 됐습니다. 경제자립과 인구 규모는 별 상관이 없는 것이지요. 우리보다 작으면서도 내수 비중이 더 큰 나라는 많습니다.
과거에 일본은 조선 침략이 정당하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인구 1억’이 필요하다는 논리를 일본 국민들에게 제시했습니다. 당시 일본과 조선 인구를 합치면 그쯤 됐으니 말입니다. 일본 이전에, 유럽 국가들도 이런 인구론을 민족주의와 제국주의 진출의 도구로 사용했지요. 우리의 경우도 아마 통일되고 나면, 다시 필요 인구 1억에 모자라는 숫자를 채우기 위해서라도, 연변 등의 한민족 거주 지역을 통합해야 한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통일해서 뭐하게?”하는 질문이 나오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젊은 층이라서 관심 없다”는 것은, “나이든 세대의 지나치게 강한 민족주의”를 기준으로 볼 때 상대적으로 그런 것이 아닐까요?
역사적으로 볼 때, 통일은 내일 당장이라도 이뤄질 수 있고 앞으로 또 한 갑자가 더 걸릴 수도 있습니다. 역사에서는 모든 가능성이 다 열려 있지요. 그러나 미래를 점칠 수 없는 인간으로서, 우리가 우선 확실하게 할 수 있는 일은 남북 간의 화해와 교류입니다. 어떤 단일 민족이 아무리 서로 전쟁을 했기로서니 60년이 넘게 만나지 않고 지낸다는 말입니까? 북한의 강고한 독재체제는 과연 문제이기는 문제입니다. 그러나 그 이전에 북한 사람들도 인간입니다. 북한을 설득하지 못하는 남한 스스로의 역량은 과연 충분한지? 통일의 당위를 노래하기 전에 겸허히 자신을 돌아봐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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