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오후, 초등부 주일학교 미사와 교리가 끝난 후에도 인천교구 서운동본당(주임 조성교 신부)에는 아이들로 북적거린다. 맛있는 간식 때문이라고? 학생들을 너무 만만히 봤다. 어린이들을 성당에 붙잡아 놓는 건 본당 도서관 ‘빈숲’이다.
▲ 인천 서운동본당 도서관 ‘빈숲’은 안락한 시설에 5600여 권의 다양한 도서를 보유하고 있어 본당신자들에게는 만남의 공간이자 온 가족의 쉼터로 자리잡았다.
마치 나무가 없는 공허한 숲을 연상케 하는 이름이지만, 막상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30~40명의 어린 나무들로 가득 차 있다. 도서관에 갖춰진 책들만큼이나 분위기도 각양각색이다. 어떤 아이는 책상 앞에 앉아 반듯하게 책을 보고 있고, 개구쟁이들은 제집인양 편한 자세로 인공나무 아래에서 일주일 동안 밀린 독서를 하느라 여념이 없다.
이런 모습은 비단 토요일뿐만이 아니다. 어린이 미사가 없는 주일에도 도서관에는 학생들의 방문이 잦다. 부모는 주일미사를 드리고, 자녀들은 도서관에서 책을 읽으며 부모를 기다리는 것은 이제 자연스러운 일이 됐다. 미사 후에는 부모들도 자녀들과 함께 도서관에서 책을 읽다보니 도서관은 본당 신자들에게 만남의 공간이자 온 가족의 쉼터로 자리 잡았다.
본당이 도서관을 마련한지 2년. 한 달 평균 520여 권의 도서가 대여되고 있고, 319명이 가족회원으로 등록돼 있을 정도다. 또한 도서관에 불이 켜져 있는 순간에는 끊임없이 신자들이 이 공간을 이용한다. 과연 무엇이 신자들의 발길을 사로잡은 걸까라는 의문이 들었지만, 도서관을 한번 둘러보고 이내 그 의문은 풀렸다.
우선 5600여 권이라는 보유도서가 첫째 이유다. 지방의 작은 도서관보다도 많은 양의 도서를 보유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인근 본당 신자들과 지역주민들까지 빈숲을 이용할 정도다. 이제 도서관은 본당의 자랑거리이자 지역의 자랑거리다.
도서관에는 종교도서를 비롯 소설과 인문, 교육, 심리학 도서 등 일반서적이 고전부터 신간도서까지 준비돼 있다. 따라서 다른 지역 도서관을 특별히 찾을 필요가 없다. 어린이 도서가 많다는 것도 장점이다. 만화책과 어린이 성경 등 장르도 다양하게 갖춰져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이용할 수 있다.
도서위원 정진옥(체칠리아)씨는 “할머니와 손녀가 같이 와서 다정하게 책을 읽고 가는 모습을 보면 우리 도서관이 가정성화에 보탬이 되는 ‘사랑방’ 같아서 뿌듯하고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아늑한 도서관 공간도 찾는 이들을 매혹시킨다. 도서들은 전문 도서관처럼 정리돼 있고 성인 이용자를 위한 책걸상도 있다. 성당 도서관인지 지역 도서관인지 헷갈릴 정도다. ‘고객’인 아이들을 위해서는 이동이 가능한 쿠션 의자를 가져다 놓았고, 자유롭게 볼 수 있도록 편안한 공간으로 구성했다. 아이와 어른이 함께할 수 있는 알짜공간의 연출이 가능했던 것은 성당 건립부터 도서관을 염두에 둔 결과다.
본당은 또 신간도서와 신자들의 신청도서 목록을 바탕으로 매달 예산을 들여 20여 권의 책을 구입하며, 도서관을 신자들을 위한 공간으로 운영하려고 애쓴다. 조성교 주임신부와 신자들도 꾸준히 책을 기증하고 있다. 그 노력의 흔적은 도서관 개관 때부터 꾸준히 이어온 도서위원들의 활동에서도 엿볼 수 있다. 8명으로 구성된 도서위원들은 도서관 관리부터 운영프로그램까지 함께 토론한다. 한 달에 한 번 모여서 독서토론과 작가 연구를 하고, 가족 회원제에 대한 의논을 나눈다.
최근 도서위원들은 새로운 프로그램 개발에 나섰다. 도서관을 많이 이용한 신자들에게 ‘다독 가정상’과 ‘특별상’을 수여하고, 초청강연과 독후감 대회를 통해서 신자들의 독서 열기를 이어갈 계획이다. 이와 더불어 아직까지 도서관을 방문하지 않은 신자들이 찾아 올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기 위한 방법을 찾고 있다.
독서지도 활동을 하고 있는 도서위원 조정옥(크리스티나)씨는 “처음 도서관을 시작할 때는 왜 필요하냐는 의견도 많았는데 잘 운영되고 있어 놀라울 뿐이다”며 “주임신부와 많은 신자들의 지지 덕분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이정 보좌신부는 “인터넷으로는 정보를 습득할 수 있지만 책에서는 지식을 얻을 수 있다”며 “특히 책은 그 질감을 손끝으로 느끼기 때문에 마음에 드는 문장에 오래도록 머물 수 있어 신앙에 도움이 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 ‘빈숲’ 도서위원들의 본당 도서관 운영 조언
다양한 책 정보 습득은 필수
1. 책 구입은 적극적으로
2009년 한 해 동안 출판된 책의 발행부수는 30만974부다. 방대한 양의 도서들이 출판되는 만큼 도서관에서도 신간서적과 이용자들이 원하는 책들을 빠른 시간에 구비해야 한다. 새로운 책들을 지속적으로 구비하지 않는다면 이용자들의 관심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또한 한 장르에 치우쳐 도서를 구입하는 것은 도서관을 멀리하는 요소가 될 수 있으므로, 종교서적과 일반서적의 비율을 잘 맞출 필요가 있다.
2. 신자들 배려한 공간으로
도서관의 이용시간과 제도적 방법 등에서 신자들의 입장을 배려해야한다. 빈숲은 신자들을 배려해 반납함을 설치하는 것은 물론이고 가족회원제 재가입비, 연체료 축소 등 다양한 노력을 펼치고 있다.
3. 진보적·활발한 운영자 돼야
도서관 운영자들은 신자들이 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도록 윤활유가 돼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운영자들이 책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습득해야 한다. 빈숲 도서위원들이 매달 독서 토론과 작가연구를 하는 것도 도서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