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피는 춘 삼월에 나는 이땅에 태어났다.
그런데 내가 9살 되던 해에 뜻밖에도 아버님이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 그때 나는 초등학교 3학년 재학 중이었다. 형편이 어려워지자 학교를 중태하고 말핬다. 그래서인지 글씨체도 아이들 글씨 같다. 하지만 전혀 글을 모르는 사람보다는 조금은 다행이다. 이런 글을 쓸 수 있다는 것도 감사하다. 아버지가 안 계셔서 어머니가 일을 하러 다니셨기에 나는 열 살때부터 집안살림을 도와야 했다. 그리고 15세되던 해 공장을 다녀야만 했다. 이때부터 장애인이 된 설움은 시작되었다. 늘 신입사원이 드어와도 계속 나만 시다 일을 시키는 것이다. 남몰래 눈물을 흘리면서도 그만둘 수는 없는 형편이었다. 일을 하지 않으면 먹고 살 수가 없기 때문이다.
부모님 사랑속에 자유롭게 성장한 어린시절에 기가 막혔지만 어쩔 수 없는 운명이다.
내가 맏딸이고 밑으로 동생이 셋 있다. 그래서 열심히 일을 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가 없었다. 이렇게 살다보니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그러다보니 어머니가 고생을 너무 하셔서 병환으로 돌아가셨다. 이제는 정말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 지 앞이 캄캄했다. 아이들만 남기고 세상을 떠나신 어머니도 눈을 감지 못하신 채 돌아가셨다. 이때부터 말이 사람 사는 것이지 정말 너무 힘들고 고생스러웠다.
하지만 세월이 약이다. 세월이 흐르는 대로 살아갔다. 그러다보니 어느덧 벌써 26세가 되었다.
그래서 어른들은 나를 보고 시집이나 가라며 중매를 해 주는 사람도 있었다.하지만 장애인이다 보니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정신이 이상한 사람이 아니면 너무 심한 장애인을 소개해 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아이를 낳을 수 있나 배를 만져보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너무 속이 상했다.
그래서 절대로 중매결혼은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그때부터 펜팔을 시작했다.
펜팔란에 소개할 때노 나는 장애인이니까 남성도 장애인을 소개해 달라고 했다. 결혼은 평생의 동방자를 만나야 하기에 처지가 비슷해야 아무 문제없이 평생을 살아갈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한 남성에게서 편지가 왔다. 서로 몇달 덩조 편지를 주고 받았다. 하지만 이 남성이 어떤 사람인가 궁금했다. 가끔 직장으로 전화가 와서 목소리는 자주 글었다. 어떤 사람인지 모르기에 만나자고 했다. 왜냐하면 남성이 정상인이면 나와 맞이 않은 상대이기 때문이다.
나와 처지가 같은 상대를 만나야 내가 편할 것 같았다.그래서 만나자고 편지를 보냈다. 그리고 만나자는 답장이 왔다. 그때 그 남성은 경상도에 있었고 나는 서울에 살고 있었다. 그러자 어느날 나를 만나러 서울에 올라왔다. 만나는 그 순간에는 정상인 같아 보였가. 옷입은채 보아서는 잘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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