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바다는 잔인했다. 끝내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차가운 물 속에서 어서 나와 따뜻한 봄 햇살을 즐겨야지.” “꼭 살아 돌아오라.” 가족과 친구들의 간절한 기도와 응원도 부질없었다.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온 강준 중사는 다음달 9일 부사관 동료와 결혼식을 앞두고 있었다. 결혼한 해군 장병들에게 제공되는 해군아파트를 위해 혼인신고까지 마쳤다. 지각 결혼식을 준비하던 그는 끝내 신부를 만나지 못했다.
중학생 시절 해군 제복에 반해 해군이 되기로 마음먹었던 이재민 병장은 평소 요리하는 것을 좋아해 조리실에서 근무했다. 지난해 휴가땐 식재료를 잔뜩 사들고 와 “군에서 갈고 닦은 솜씨를 보여주겠다”며 가족들에게 손수 밥상을 차려주었다. 꿈을 이루었지만, 결국 주검으로 가족 품에 안겼다. 7월에 제대하는 강현구 병장은 집에서 애지중지 키운 외아들이었다. 어머니는 “금지옥엽 외아들을 곧 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는데 이게 무슨 날벼락이냐”며 오열했다.
그들은 우리 모두의 아들이요 친구였다. 지켜주지 못한 죄스러움에, 남은 자들은 속울음을 삼켜야했다. 4월의 바다는 너무도 큰 슬픔을 남겼다.
지난달 10일, 밤을 꼬박 새운 한 대학생이 눈이 수북이 쌓인 서울 안암동 고려대학교 교정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정경대학 후문 게시판에 손으로 꾹꾹 눌러쓴 대자보를 붙였다. 정문 앞에서는 ‘오늘 저는 대학을 그만둡니다. 아니, 거부합니다’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1인 시위를 했다.
김예슬(24)양. 그는 “진리도 우정도 정의도 없는 죽은 대학이기에, 대학을 그만 둔다”고 했다. “용기라기보다는 끝이 안 보였다. 좋은 대학에만 들어가면, 좋은 직장에 취직하면, 좋은 결혼을 하면, 뭐 하면, 뭐 하면…. 언제까지 트랙에서 경주마로 달려야 하나라는 의문이 들었다. 아파야 나으니까. 나부터 끝도 없는 트랙에서 멈춰서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누구지? 왜 살지? 어떻게 살아야 하지? 이런 큰 물음을 할 수 있도록 특권처럼 주어진 게 대학 시절이다. 하지만 지금은 이것이 불가능해진 시대다. 대학(大學) 없는 대학이 인생 전체를 집어삼키고 있지 않은가.”
20대 한 젊은이의 날 선 고백과 외침이 슬프게만 들리는 것은 왜일까.
삼성반도체 온양공장에서 근무하다 2007년 9월 백혈병이 발병해 치료를 받던 23살의 여성노동자 박지연 씨가 지난달 31일 끝내 숨졌다. 박 씨는 하루 12시간 2교대 근무를 일주일에 4일씩 하며 역한 화학약품 냄새와 격무에 시달렸다. 그렇게 일하고 한달 130만원을 받았다. 2008년 4월 골수이식을 받고도 죽을 고비를 넘기며 회복과 산재판정을 위해 외롭게 싸웠으나 끝내 운명을 달리했다. 현재까지 삼성반도체에서 일하다 백혈병, 림프종 등 조혈계 암 발병으로 사망한 노동자는 9명이다. 박 씨의 억울한 죽음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우리 국토의 젖줄인 4대강 유역이 흉칙한 몰골로 변하고 있다. 철새들과 희귀종 보호 생물들의 보고(寶庫)이자 생존 터전이 굴착기와 공사 차량에 뭉개지고 있다. 정부는 4대강 사업이 생명을 살리고 생태계를 복원하는 일이라고 주장하지만, 한쪽에선 생명을 죽이는 짓이라며 반대운동을 벌이고 있다. 어느 한쪽 누군가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 4대강 사업 중단을 요구하는 종교계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급기야 성직자들이 거리로 나섰다. 정부가 그들을 거리로 내몰고 있다. 87년 민주화운동 이후 20여 년 만이다.
“너희 앞에 생명과 죽음을 내놓는다. 너희나 후손이 잘 되려거든 생명을 택하여라.”(신명 30,19)
春來不似春(봄은 왔으나, 봄 같지 않다). 때 늦은 봄날, 눈물이 나는 까닭이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














.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