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어느 사형수의 변호를 맡았던 배기원 변호사의 글이다. 한때의 잘못으로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회개의 삶을 통해 새로운 삶으로 거듭 난 사형수의 모습은 오늘날 쟁점이 되고 있는 사형제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한다.
변호사로 재직할 당시, 법원으로 들어가다가 우연히 다니던 대구 수성본당의 이대길 시메온 주임신부님을 만나 들어보니, 몇 년전 경산에서 세례를 준 요아킴 형제가 살인 사건의 범인으로 1심에서 사형선고를 받았다는 것이다. 안타까워 하시는 신부님을 도와드리기로 하고 항소심에서 요아킴 형제를 변론하기 위해 접견해서 기록을 검토해 보게 되었다.
경찰은 유산을 노린 자식들 중 누구의 소행이 아닌가 하고 피해자 가족들을 용의선상에 놓고 수사를 하다가 아무런 단서를 못 찾자, 때마침 도박사건으로 입건되어 조사중이던 요아킴이 피해자 집에 전세 들어 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여러번 경찰서로 불러 조사를 했는데 어느 날 요아킴이 조사를 하던 형사 손에 끼고 있던 묵주반지가 갑자기 광채를 발하는 것을 보고 스스로 자신이 살인사건의 진범이라고 자수를 했다는 것이다. 뿐더러 자수 후 요아킴 형제는 자신의 잘못을 깊이 뉘우치고 세례를 주신 이대길 신부님과 교도소 봉사를 하는 강 후꼬 수녀님께 수 십통의 참회 편지를 보낸 사실이 드러났다.
항소심 선고를 기다리고 있는데 공교롭게도 선고를 1주일쯤 앞두고 재판장이 서울로 인사발령이 나버렸다. 통상 선고기일 전에 인사이동이 있으면 모든 사건을 재개하여 후임 판사에게 넘기는 것이 관례이다. 그런데 가톨릭 신자였던 그 판사는 서울로 떠나기 전 많은 사건 중 오직 요아킴 사건 한 건에 대해 선고기일을 당겨서 사형선고를 한 1심 판결을 파기하고 무기로 감형하여 선고했다.
이 어찌 우연으로 돌릴 수 있겠는가. 요아킴은 물론이고 나도 주님의 크나큰 은총이 요아킴 형제에게 내린 것으로 믿고 있다. 사건 당시 30대 초반이던 요아킴 형제는 지난 20년간 한주일도 빠지지 않고 매주 일요일 나에게 편지를 썼고 아직도 어김없이 수요일 쯤이면 그 편지를 받게 된다. 주님에 대한 찬미와 감사, 봉사와 기쁨에 충만한 그 편지를 받을 때마다 사회일에 쫓겨 신앙생활을 소홀히 나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곤 하였다.
교도소에서 ‘가톨릭 수사’로 통할 만큼 신앙인으로 열심히 살면서 자동차 1급 정비사, 조적공 등 그곳에서 배우고 딸 수 있는 기술, 자격을 모두 취득하였고, 또 교도소 내 문예지에 수기를 써서 특선을 하는가 하면 테니스 대회에서는 해마다 1등을 하고 또 최근에는 하모니카로 성가 300여 곡을 부를 수 있다며 선교 열정도 대단하다.
요아킴 형제는 모범수로 인정받아 몇 년 전 무기에서 20년으로 감형되었다가 형기를 1년여 앞두고 최근 특사로 가석방되어 20년만에 완전한 자유인으로 돌아왔다. 우리 모두가 요아킴 형제와 그 가정에 주님의 은총이 풍성히 내리도록 기도하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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