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 필자는 첫 개인전을 치르는 학생들의 전시서문을 부탁받을 때가 종종 있다.
이제 첫 발을 떼는 초보 작가들과 함께하는 글쓰기 작업은 그들의 삶을 알아가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에 당사자들뿐만 아니라 필자에게도 무척이나 설레는 일이다. 필자는 글을 쓰기 전 작가의 작업실을 방문해서 직접 작품을 보며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곤 하는데 그러면 대부분의 작가들은 그간 입 밖에 내놓지 않았던 자신의 비밀(?)들을 털어놓기 시작한다.
거의 모든 작가들이 어렵사리 꺼내놓은 이야기들은 다름 아닌 그들의 상처에 관한 것들이었다. 그 중 유독 상처가 깊어보였던 한 어린 작가의 사연과 그의 작품들은 삶의 부정적인 면을 달리 바라보게 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나이에 비해 성숙한 작업으로 눈길을 끌었던 작가는 어려서부터 어머니로부터 끊임없이 죽으라는 소리를 들으며 자랐다고 했다.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가족의 사랑조차 허락받지 못한 쓸모없는 인간이라고 자학하면서도 그가 삶을 지탱할 수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예술 덕택이었다. 그에게 작업은 치유이자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삶 자체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의 작품은 그 어떤 비관적인 면도 찾아볼 수 없고, 오히려 삶에 대한 깊고 서정적인 사색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한 인간으로서 그의 삶은 고통뿐인 것처럼 보였으나 예술가로서의 삶은 오히려 그 고통으로 인해 빛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들려준 어린 작가에게 자신 있게 말해 주었다.
“당신의 상처와 고통은 당신이 훌륭한 예술가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느님께서 내려주신 최고의 선물이다”라고 말이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