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모님의 삶을 묵상하는 5월, 성모성월이다. 많은 신앙인들이 매년 이맘때가 되면 선행과 묵주기도, 희생의 꽃으로 화환을 만들어 성모님께 바친다. 이렇게 어머니의 지극한 사랑에 대해 자각하는 자녀는 일탈하지 않는다. 어머니의 다독이는 사랑의 편안함 안에서, 올바른 신앙의 길을 걸어갈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일각에서는 그릇된 성모신심이라는 그물에 걸려, 일탈하는 사례가 심심찮게 일어나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특히 나주의 윤 율리아 문제는 안타까움을 넘어, 안스러움마저 느끼게 한다. 현재 윤 율리아는 자신의 목소리만 외치고 있다. 교회와 교도권의 목소리를 듣지 않는다.
지역 교회에서 자신의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이제는 로마까지 달려가는 요란함을 보이고 있다. 성지순례를 통해 누구나 갈 수 있는 로마에 한번 다녀오고 나서는, 교황청을 공식 방문한 것처럼 선전하고 있다. 오기와 불순종으로 똘똘 뭉친 모습이다. 마치 저잣거리에서 악을 쓰는 노파를 닮았다.
이는 최근 한국사회 분위기와 다르지 않다. 권위를 불신하는 것이 그렇다. 물론 사회의 권위는 행사하는 주체에 따라 불신임을 검토할 수 있다. 하지만 교회의 권위는 그렇지 않다. 신앙인이라면 교구가 심사숙고 끝에 내린 결정을 따라야 한다. 교구의 판단이 옳고 그르고의 문제가 아니다. 교회를 통해 섭리하시는 그리스도안에 머물겠다는 의지가 있는가 없는가의 문제다.
겸손과 순명의 덕(德) 없이는 공동으로 한 신앙을 고백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교황 바오로 6세와 요한 바오로 2세는 그래서 마리아 공경이 기적이나 발현에 치우치지 말고 교회의 가르침 안에서 올바르게 이뤄져야 함을 수차례 강조한 바 있다. 광주대교구는 지난 2007년 ‘나주 윤 율리아와 그 관련 현상들’에 대한 첫 번째 입장을 발표한 이래 수차례의 공문을 통해 나주 윤 율리아와 관련된 일체의 사건을 교회가 인정하지 않음을 분명히 해왔다. 4월 15일에도 공문을 통해 “나주 윤 율리아와 관련한 유인물이나 자료를 일제히 수거해 폐기시켜 달라”고 당부했다.
성모성월을 성모성월답게 보내려면, 성모 공경이 삶으로 구체화되어야 한다. 단순히 전구를 위해 매달리고 울부짖을 것이 아니다. 진정으로 매달리고 울부짖을 수 있는 사람은 성모님의 삶을 따라 산다. 성모님의 삶은 ‘순명’의 모범 그 자체다(루카 1,38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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