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3학년 때 일이다. 마을 한 귀퉁이 개신교 개척 교회에 갔다. 예배가 끝난 후 간식시간. 목사님이 궁금한 것이 있으면 질문하라고 했다. 손을 번쩍 들었다. 당돌했다.
“인간에게는 영혼이 있다고 하셨는데, 제 몸 속 어디에 영혼이 있나요?”
배와 허리, 머리를 이리저리 짚어가며 질문했다. 목사님의 “허허”웃으시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목사님은 대답 대신 질문을 하셨다.
“부모님을 사랑하니?” “예!”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목사님도 배와 허리, 머리를 이리저리 짚어가며 다시 물으셨다.
“그렇다면 그 사랑이 네 몸 속 어디에 있니?”
영혼과 사랑의 개념, 형이상학적 개념에 대해 처음으로 눈을 뜬 날이었다. 눈에 보이는 것을 넘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힘이 생긴 날이었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머리로 이해되지 않는 것은 좀처럼 믿으려 하지 않는다. 눈으로 확인하지 못하는 것은 믿음의 순위에서 저만치 뒤로 밀린다. 한술 더 떠서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다.
하지만 절대적으로 확신하는 것, 안다고 하는 것은 대부분 불확실한 것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잘못된 근거에 의지하다보니, 그릇된 확신이 생기고, 결국에는 잘못된 행동으로 이어진다. 이런 사례는 수없이 많다.
사람들은 한때 지구는 움직이지 않는다고 ‘확신’했다. 천재 이론물리학자 아인슈타인도 벨기에의 물리학자이자 사제인 르메트르 신부가 빅뱅이론을 말하기 전에는 우주가 영원으로부터 현재의 모습으로 있어왔다고 ‘믿었다’.
멀리 갈 필요 없다. 지금 우리들도 마찬가지다.
감성지수(EQ)는 평범한 가정에서 성장하는 대부분의 청소년들에게는 크게 필요 없는 개념이다. 미국의 경우, 마약과 폭력을 일삼는 청소년들을 위해 이 개념이 교육에 사용됐다. 그런데 한국에선 한때 수 십 만원씩 돈을 들여 멀쩡한 자녀들을 학원에 보내 EQ 교육을 시키는 붐이 일었었다.
인간은 뇌의 능력 중 10%만 사용한다는 것도 오래된 편견이다. ‘놀고 있는 90%의 뇌’는 없다. 0.001%의 뇌 손상만으로도 인간은 중풍, 우울증 등 질병을 앓을 수 있다. 유아에게 모차르트 음악을 들려주면 지능지수(IQ)가 높아진다는 것도 잘못된 사실로 판명난지 오래다. 화를 참기보다 터뜨리는 것이 낫다는 것도 틀린 상식이다. 최근 심리학은 화가 날 때 그대로 밖으로 표출하는 것은 오히려 공격적 성향을 키운다고 보고하고 있다. 안데르센이 동성애자였고, 그 영향으로 「미운오리새끼」와 「인어공주」가 탄생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요즘 ‘너’를 향한 비난이 넘쳐난다. 어느 한편을 지칭하는 말이 아니다. 두 동강난 것은 천안함뿐만이 아니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다. 그 완고함과 완고함이 격돌한다. 설익은 지식으로 무장한 이 시대의 문화물들은 마치 격분과 원한으로 핏줄이 터질 듯한 뇌의 상태를 진정시키기 위해선, 땅을 덮을 정도의 피가 필요하다고 외치는 듯하다.
눈을 가리고 있는 것들을 걷어내자. 이를 위해선 겸손히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아야 한다. 설익은 지식과 그릇된 신념, 그리고 권력 혹은 대중이 만들어내는 ‘허상 진리’에 대한 맹신을 벗어던지자.
“보이는 것은 잠시뿐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다”(2코린 4,18). 영혼, 참 사랑, 참 진리, 참 평화, 참 생명…. 우리가 지금 해야 할 일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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