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학위 논문을 준비하던 시절 필자는 틈나는 대로 국내 성당의 작품들을 보러 다니곤 했다.
답사를 다니다보면 큰 성당뿐만 아니라 지방의 아주 작은 공소까지 방문하게 될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여러 공소들 중에서도 경상도 상주와 성주 지역의 공소들을 돌아보며 느꼈던 훈훈한 인정이 지금까지 기억에 남는다.
운전을 못하는 필자는 친구 차를 얻어 타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중교통을 이용해 시골 공소를 방문했었다. 공소 회장님들께 미리 전화를 드리고 물어물어 도착하면 친절히 안내도 해주시고 작품에 얽힌 이야기들도 구수한 사투리로 재미나게 들려주셨다.
바쁜 일정에 쫓겨 부랴부랴 작품촬영을 마치고 다음 방문지로 옮기기 위해 길을 나서면 어김없이 필자의 손을 잡고 “먼 길 왔는데 밥이라도 먹고 가요”라고들 하셨다. 솔직히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는 너무 오랜만에 들어보는 말이어서 그랬는지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바로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잘 모르는 각박한 세상에 음식을 나눈다는 것이 가당키나 한가. 그런데 아직도 밥을 먹고 가라는 사람들이 있다니.
필자는 아직 사라지지 않은 인정이 반가워서 잠시 앉아 이것저것 챙겨주시는 대로 잘 먹고 나왔다. 운이 좋아서 작은 동네잔치라도 있는 날이면 자연스럽게 어울려서 한 상 잘 얻어먹기도 했다.
사실 돌이켜 보면 우리의 밥 인심은 꽤 넉넉했었다. 별식이라도 하는 날에는 이웃지간에 나누어 먹고, 집에 아무도 없어 밖을 서성이는 옆집 아이들도 데려다 밥을 챙겨먹이던 때도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제는 음식을 나누기는커녕 한 동네에 살면서도 서로 누구인지 몰라 인사조차 나누기 어색한 지경에 이르렀다. 같은 층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서도 서로 낯설기만 한 사람들을 보면서 문득 시골 공소의 넉넉한 인심이 그리워진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