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월요일 오후 2시 명동성당에는 수천 명의 신자들이 생명평화 미사에 참석하기 위해 모였다. 얼마 있다가는 수천명의 사제와 수도자들이 4대강 사업을 반대하는 2차 성명서를 발표할 예정이다. 지난 3월 18일 주교단에서 4대강 사업을 반대하는 성명서를 발표한 지 두 달여 만이다. 혹독한 독재시절에도 하지 않았던 일들이 연이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왜 주교님들과 사제, 수도자들은 정치적이라는 비판을 들어가면서까지 굳이 이런 일을 하는 것일까?
알다시피 사회교리 때문이다. 가톨릭 사회교리는 신자들이 또는 교회가 사회적인 쟁점들에 대해 식별(또는 판단)하는 기준을 제공한다. 이 기준에는 인간 존엄성의 원리, 보조성 원리, 연대성 원리, 공동선의 원리, … 최근에 주목하게 되는 ‘창조질서 보전’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이 가운데서 주교단은 공동선 원리와 창조질서 보전을 중요한 판단기준으로 삼았다. 우선 공동선의 원리는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여러 조건들의 총체로 정의할 수 있는데, 소위 국책사업이 이 원리에 기초하고 있었는지, 그리고 현재 기초하고 있는지를 판단 대상으로 하였다.
주교님들은 정부가 이 사업을 공동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면서 설득과 합의 없이 비밀리에 진행하는 것은 진실성이 부족하다고 판단하였다. 공동선을 위한 목적을 갖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또한 다른 문제들과 달리 환경은 다음 세대에 미치는 영향이 크고, 현재에도 예측 가능한 문제들을 면밀히 고려하지 않는 것이 문제라 판단하였다. 창조질서의 보전은 그동안 착취의 대상으로 생각해왔던 자연이 엄연히 창조질서에 속하고, 이의 파괴가 곧 인간 생명을 위협하는 것이라는 생명의 유기적 연결성을 강조하는 가르침이다. 이에 비춰볼 때 이 사업은 한반도의 창조질서를 심각하게 파괴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주교단의 판단이다. 그런데 정부와 일부 ‘뜻있는 신자’들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은 이에 대하여 정치적 목적을 가진 것이라며 애써 평가절하하고 있다.
그러면 이러한 입장표명이 정치적인가? 물론 정치적이다. 교회의 입장표명이 현실에서는 불가불 특정 집단의 목소리를 대변하게 되는 까닭이다. 그러나 이것은 교회가 편파적인 입장을 취하기 때문이 아니라, 윤리적 판단과 실천에 중립이 없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일례로 ‘가난한 이들의 우선적 선택’이라는 가르침을 들 수 있다. 이 가르침은 가난한 이들만을 선택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이들을 거쳐 궁극에 모든 이에게 다가가겠다는 뜻을 담고 있다. 진정한 평등은 강자가 약자의 눈높이에 서 있을 때 실현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가난한 이들을 우선적으로 선택하는 것은 약자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궁극에는 모든 인류를 위한 것이다. 야훼 하느님이 이스라엘을 통하여 온 인류에게 구원을 전하고자 하셨듯이 말이다. 그러니 주교단이나 사제들이 성명서를 발표한 것은 특정 정당을 위해 정파적 혹은 당파적 판단을 내린 것이 아니라 교회의 정상적인 사목을 수행한 것이라 하겠다.
주교회의와 사제, 수도자들이 정치적으로 민감한 시점에 이러한 판단을 내린 것은 현 단계 한국교회와 사회에 몇 가지 의의가 있다. 먼저, 1990년대 이후 생명윤리 문제에 관하여 목소리를 내온 교회가 생명의 영역을 창조질서 보전까지 범위를 넓혔다는 데 의의가 있다. 사형제도 폐지 노력에 이어 환경도 옹호해야 할 생명이라는 인식에 이른 것은 반가운 일이다. 두 번째는 권력에 의해 언로가 막혔을 때 권력을 비정당화하는 역할은 교회의 사명 가운데 하나이다. 인기에 영합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국민의 공동선을 실현하고자 하는 시도일 때 이는 참으로 교회정신에 충실한 것이다. 세 번째로, 주교단의 성명서는 교회가 필요할 때 여전히 발언할 수 있는 힘이 있고, 살아있다는 인상을 주었다. 권력과 타협하지 않고 국민의 공동선을 생각하는 발언은 그 자체로 복음적이다. 마지막으로, 미국 주교단과 같이 주교 개인의 성향과 관계없이 국가적 의제에 대하여 도덕적 판단을 내릴 필요가 있고, 더 나아가 한국이 영향을 미치는 나라들에까지 관심의 범위를 넓힐 필요가 있다. 이런 태도가 진정으로 한 국가의 공동선을 넘어 인류의 공동선을 실현하는 길이다.
21세기를 맞아 주교단과 사제, 수도자들이 국가적 의제에 대하여 분명한 목소리를 낸 것은 비단 4대강 사업에 그치지 않고, 아시아적인 의제들로까지 확장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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