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품은 늘 따뜻했다. 한겨울 찬바람을 맞고 돌아오신 그 품 속도 따뜻하긴 마찬가지였다. 어머니 치맛자락에선 늘 같은 향기가 났다. 설명할 길 없는 그 독특한 내를 난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늦살이란 소릴 들으며 자란 나는 언제 어디서든 ‘엄마’를 먼저 찾았다. 국민(초등)학교 때 기억이다. 꽃샘 추위도 멀찍이 물러난 3월이면 기와지붕 밑으로 따사로운 봄 햇살이 마당 가득 비치곤 했다. 학교를 파하자마자 대문을 박차고 들어온 나는 늘 먼저 ‘엄마!’하고 불렀다. 그때 엄마는 봄이 되면 늘 하듯이 안방 앞 대청마루에 앉아 이불천을 꿰매고 계셨다. “이제 오나”시며 돋보기 안경 너머로 나를 바라보는 그 얼굴을 확인하고서야 난 마음이 놓였다. 가방을 던져두고 친구들 만나러 가는 내 발걸음은 엄마가 있어서 늘 신이 났다.
그땐 동네 골목길이 온통 놀이터였다. 멀리 갈 엄두도 못냈을 뿐더러 놀이기구래야 학교운동장에 있는 철봉이 고작이었다. 다니던 국민학교는 집에서 걸어서 3분 거리. 친구들과 어울려 놀다가도 문득 엄마 생각에 집으로 쫓아온 나는 대문을 들어서며 또 “엄마” 하고 불렀다. 엄마는 늘 그렇듯 “여기 있다” 하고 대답하셨다. 어머니의 목소리를 확인하고서야 난 다시 나가 놀곤 했다. 엄마의 존재는 늘 그렇게 내게 가장 큰 위로이며 힘이었다.
지금의 큰형님 위로 아들 넷을 먼저 보낸 어머니는 한이 많으셨다. 특히 다 키운 큰아들을 먼저 하늘로 보낸 것이 평생 가슴에 맺혔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돌아가신 큰형님은 다니기만 해도 ‘수재’ 소리 듣던 K고를 나왔다. 대학 1학년 여름방학때 고향 냇가에서 잡은 민물고기를 먹고 탈이 나 며칠만에 세상을 떴다. 읍내 병원에 한번 데려가보지도 못하고 그렇게 미련스럽게 자식을 보낸 것이 얼마나 한이 됐을까. 아들이 죽던 날, 어머니는 대문 앞에서 스러지셨다고 했다. 난 어릴적, 동네 지기들과 막걸리를 마신 어머니가 속절없이 서럽게 울던 모습을 기억한다. 그땐 영문도 모르고 무섭기도 했다. 그 심정이 어땠을지…이젠 조금 알 것 같다.
또래 아이들 엄마보다 늙어 보인다는 이유로, 나는 어머니가 학교에 오는 것을 부끄러워했다. 엄마가 학교에 온 것은 아마도 초등학교 졸업식때가 마지막이었을 것이다. 중학교 입학식때도 그랬지만, 그 이후로 어머니는 한번도 내 허락(?) 없이 학교에 오시질 못했다. 어머니의 빈 자리는 늘 누나가 대신했다. 철없는 막내아들 하는 짓이 서운하기도 했으련만, 어머니는 이런 저런 핑계를 대시며 못가서 미안하다고 하셨다. 그게 엄마의 마음이었다.
어머니는 간경화로 오랫동안 고생하셨다. 늘 엄마 품을 그리워하며 자란 아들은 정작 불편한 어머니에게 자주 얼굴을 보여드리진 못했다. 간성혼수로 며칠을 고생하셨다는 말을 들어도 맘은 어느새 저만치 달려갔지만 발 길은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사는게 바쁘다는 이유로.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였을까. 어머니는 아들이 살고 있는 곳을 힘들게 찾아오셨다. 난 그때 일어서고 앉기조차 힘들어하는 어머니를 난생 처음 업어드렸다. 계단을 오르며 어머니가 더 힘들어 하셨지만, 굳이 내려달라는 말씀은 않으셨다. “살다 보니 이런 날도 있네, 내가 엄마를 다 업어보고.” 어머니는 “그래, 그래” 하며 기뻐하셨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는 돌아가셨다. 둘째가 돌 지난지 얼마 되지 않을 때였다.
“성모성월이요 제일 좋은 시절, 사랑하올 어머니…”
5월 성모찬가를 불러본다. 엄마가 보고 싶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














.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