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겨울 휴가차 뉴욕에 다녀왔다. 오랜만에 뉴요커로 살고 있는 친구들도 만나고 맨해튼 곳곳에서 열리고 있는 좋은 전시들도 아침부터 저녁까지 부지런히 보러 다녔다.
드로잉을 무척 좋아하는 필자는 때마침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진행 중이던 브론치노의 드로잉 전을 보기 위해 야간 개관 일을 골라 미술관으로 향했다. 기부금 2달러를 내고 입장해 여유 있게 전시장을 돌아보고 있었는데, 주변을 둘러보니 관람객의 거의 절반 정도가 나이 지긋한 중년 이상의 사람들이었다.
그중에서도 필자의 눈길을 끌었던 이들은 한껏 멋을 내고 거장의 드로잉을 꼼꼼하게 들여다보고 있던 노부부였다. 주름진 얼굴에 백발이 성성한 노인들이었지만 서로 다정하게 의견을 교환해가며 작품을 감상하는 모습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필자는 이 노부부를 보면서 퇴직 후 특별한 소일거리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야 하는 우리나라 어르신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물론 모든 분들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이른 퇴직 후에 갑자기 많아져버린 시간을 감당하지 못해 괴로워하는 분들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탑골공원 앞을 지날 때마다 필자는 우리나라에도 노년층이 쉽고 재미있게 다가갈 수 있는 문화 활동 프로그램 마련이 시급하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러면서 인근에 위치한 서울시립미술관이나 덕수궁미술관, 로댕갤러리 등에서는 왜 노년층 관람객을 찾아보기 어려울까 하는 의문을 갖게 된다. 사실 우리나라 미술관의 문턱은 아직 많은 이들에게 높기만 하다. 그 문턱을 낮추기 위해서 노년층을 위한 무료관람 기회를 늘리고 쉬운 설명회나 교육프로그램을 더욱 다양하게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미술전시를 관람하고 덕수궁 돌담길을 거니는 노부부들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날이 어서 오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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