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여성주의적으로 사는 사람이라 생각한다.
왜냐하면 내가 여성으로 가지고 있는 생물학적 특성, 사회적 위치 등에 대해 내가 여성이라서 핸디캡이 있다거나 내가 여성이라서 억울하다는 생각을 안하고 살기 때문이다.
물론 현실적으로 억압과 억울함이 없다는 건 아니다. 대한민국에서 일하는 엄마로서 살아가는 내가 여성에게 가해지는 불평등을 왜 모르겠는가? 하지만 난 그런 사회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내가 여성인 게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여성으로서의 생물학적 특성, 가정에서의 엄마로서의 위치, 일하는 여성으로서의 가치를 자랑스럽게 여기고 사회에서 인정하든 억압하든 나는 나만의 길로 그것에 나름대로 저항하며 살고 있다. 물론 나는 고임금 노동자이니 다른 일하는 여성들과는 차이가 많이 있을 것이다. 그들의 삶을 내가 다 어찌 이해하겠는가.
그런데 일부 여성운동가들의 주장을 보고 있으면 여성운동가들이 스스로 여성 고유의 능력을 부정하고 비하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여성인 것이 그리도 부끄러운 것인가? 아기를 낳고 자식을 키우는 것이 억울하고 자기 삶을 얽매이는 짓이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성이 노동력 재생산의 도구로 이용당하는 것이라 받아들이는 거 자체가 여성 스스로를 비하시키는 생각이다.
본인들이 노동력의 재생산의 도구라고 인정하기 때문에 출산파업이니 낙태권이니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여성이 자기 자식을 낳아 키우는 것이 단순히 노동력 재생산을 위한 목적인 것인가? 왜 그것으로 인정하고 정의함으로써 자신 스스로를 애나 낳는 기구로 전락시키는가?
여성이 자식을 낳아 키우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고 보호받아야할 일이고 사회가 보장하고 지원해줘야 하는 일이다. 또한 가사노동 또한 매우 가치 있는 일이고 사회가 무시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어떤 여성들은 여성이 집에서 애나 키우며 지내는 걸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거 같다는 생각도 든다. 애를 키우고 가사노동을 하는 것이 가치 없고 별 볼일 없는 노동이라 생각하는가? 스스로 가사노동을 폄하하며 지내면서 지금까지 가사노동을 담당했던 우리 어머니 세대는 가치가 떨어지는 노동을 하고 계셨단 말인가? 가정을 이끌어가는 가사노동 또한 가치 있는 일이다. 그 가치를 사회가 인정하고 있지 않으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사회가 전업주부의 가사노동을 인정하고 가치 있게 존중하라고 말해야한다.
남성들이 양육에 무책임하니 평등하게 나까지 양육에 무책임하겠다.
남성들이 임신에 무책임하니 평등하게 나까지 무책임하겠다.
남성들이 가사에 무책임하니 평등하게 나까지 무책임하겠다.
사회가 애 낳아 키우는 걸 도와주지 않으니 나도 애 낳아주지 않겠다.
사회가 일하는 엄마를 힘들게 하니 나도 일하면서 엄마가 되지 않겠다.
이런 생각들은 여성 스스로 자신의 애를 낳는다는 생각보다는 남성을 위해 애를 낳고 사회를 위해 애를 낳는다는 기본 인식이 깔려있는 것이다. 여성이 남성의 애를 낳고 사회를 위한 노동력을 재생산하는 기계란 말인가?
나는 여성들이 이렇게 생각했으면 좋겠다. 임신과 양육은 남녀 모두의 공동책임이다. 남성이 무책임하다 해서 공평하게 나까지 무책임하겠다 하지 말고 임신과 양육에 대해 남성에게도 공평하게 책임을 묻고 책임을 다할 것을 요구하길 바란다. 사회가 애 키우기 버겁게 한다면 나까지 엄마로서의 권리를 포기하지 말고 애 낳아 키우는 것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길 바란다. 일하는 여성의 가사노동 또한 남성과 공평하게 나눠질 것을 주장하기 바란다. 여성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능력을 스스로 부인하며 애낳고 자식 키우는 능력을 스스로 비하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내가 여성인 게 자랑스럽고 엄마인 게 자랑스럽다. 대한민국 현실에서 일하는 엄마로서 어려움은 많지만, 그것이 나의 자랑스러움을 꺾지는 못한다. 부당함이 있다면 저항할 것이고 억압이 있다면 그 억압을 향해 싸울 것이다. 내가 여성임을 부인하고 내가 엄마가 되는 것을 거부하면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일하는 엄마라서 일하는 엄마를 당당하게 인정해주고 존중해주는 그런 사회가 오길 꿈꾸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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