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대’를 나왔다고 하면 십중팔구는 ‘S대?’라고 되묻는다. 혼자 생각일지 몰라도, 아마 상대는 내가 말한 ‘S대’를 두고 국내 최우수 인재들만 간다는 바로 그 ‘S대’를 떠올렸으리라. 하지만 ‘S대’가 어디 전국에 한 두 곳이겠는가.
내가 말한 ‘S대’는 사제직을 준비하는 대신학교(줄여 신학교)를 말한다. 사람들에게 ‘대신학교’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신부 만드는 곳’ 혹은 ‘신부 되기 위해 준비하는 곳’ 정도이다. 출신 대학이 어디냐는 질문에 ‘S대’라고 한 것은 틀린 답도 아닐뿐더러(난 선목대신학교 졸업생이다), 사실은 이해도 정보도 부족한 질문에 무어라 답하기가 곤란한 내 처지를 무마하기 위한 방편이기도 하다. 신학교를 다녔다고 하면 ‘그럼 신학교를 왜 나왔냐’고 물을 게 뻔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어릴적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지곤 했다. 앨범에서 검정색 수단을 입은 아빠의 앳된 모습을 본 아이가 “아빠는 옛날에 신부님이셨어?” 하고 묻는다. 난감하기 그지없다. 설명하자니 앞 뒤 사정이 길어질테고, 물증이 있으니 아니라고 하기도 힘들다.
처음 ‘사제’(司祭)로 살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된 것은 고등학교 2학년때다. 월터 취제크 신부의 ‘러시아에서 그분과 함께’, 쟈니 이렉슨의 ‘추락에서 날개로’를 읽고 사제의 삶을 동경했다. 중학교 3학년때 세례받은 후 자주 ‘신부가 되면 좋겠다’는 말을 들은터라 ‘나도 신부가 될 수 있을까’하던 생각이 ‘신부로 살고 싶다’로까지 발전했다. 당시 난 영성과 기도에 관한 소책자에서부터 토마스 머튼의 ‘칠층산’과 대데레사 자서전까지 닥치는대로 읽었다. 그땐 무언가에 홀린듯 시험도 제쳐두고 영성서적 읽기에 빠졌었다. 신학교 생활은 군복무까지 7년 넘게 이어졌다.
신학교를 자퇴한지도 20년을 훌쩍 넘겼다. 그동안 가끔 아내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았다. “신학교 나온 거 후회 안해?”라고. 긴장되는 순간이다. 속내야 어떻든 표정관리부터 해야 한다. “후회한 적 없어. 결혼생활도 성소이고 한 가정을 신앙 안에서 잘 꾸리고 이웃에 모범이 될 수 있다면 이 또한 얼마나 복된 삶인가”하고 말하곤 아내의 동태를 살핀다. 하지만 그 말은 사실이다.
몇해전이다. 에디트슈타인 성녀에 관한 책을 찾으러 대구 남산동 신학교 도서관을 찾았다. 일을 보고 정적에 싸인 신학교 운동장을 걸어나오다 신학교 건물을 돌아다본 순간, 예상치 못했던 전율이 온 몸을 감쌌다. 그리곤 가슴이 방망이질 했다.
‘내가 찾고, 누리고 싶은 것이 이것인데….’
지난해 6월 개막된 ‘사제의 해’가 폐막을 앞두고 있다. 알다시피 사제의 해는 전 세계 본당사제의 수호성인인 요한 마리아 비안네 신부의 탄생 150주년을 기념해 선포됐다. 프랑스 시골마을 아르스의 본당 신부였던 비안네 신부는 “사제직은 예수 성심에 대한 사랑”이라고 자주 말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이에 대해 “사제들이란 교회만이 아니라 인류에게 주신 무한한 은총임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묵상하게 해준다”고 개막 서한에서 밝혔다.
생각과 의지, 감정과 생활방식에서 온전히 주님과 하나되어 그리스도의 말씀과 행동을 그대로 보여주는 사제, 그들의 헌신과 순종, 사랑을 통해 하느님을 드러내는 사제, 인간적인 면도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도구가 되는 사제…. 사제의 해를 보내며 우리는 그런 사제의 모습을 떠올린다.
사제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과 함께, 세상의 화해와 평화, 희망의 선포자가 되기를 두손 모아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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