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는 지난 2005년 남모씨 부부와 배아 등이 현행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생명윤리법)’이 인간 존엄과 가치, 생명권 등을 침해한다며 낸 헌법소원에 대해 5월 27일 재판관 전원 일치로 합헌 판결을 내렸다. ‘초기 배아를 인간생명으로 볼 수 없으므로 생명윤리법이 인간생명권을 침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유감이다. 생명 문제만큼은 대화와 타협의 대상이 아니다. 헌재는 초기 단계 배아는 인간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이 판단은 인간인 배아를 연구실에서 난도질해도 살인이 아니라고 하는 충격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배아가 인간이냐 아니냐 하는 문제는 법이 판단할 문제가 아니다. 백보 양보해서 배아가 인간인가에 대한 의문이 남는다 하더라도 어떻게 감히 살인을 무릅쓸 수 있는가. 이는 ‘무지에 의한 살인’을 용납하지 않는 법이 자가당착에 빠지는 것이기도 하다. 일부 생명공학 학자들의 주장대로 배아가 생명인지 아닌지 확신하기 힘들다면, 확실하게 과학적 증명이 이뤄질 때까지 판단을 유보하는 것이 옳다.
인간은 수정 순간부터 죽는 순간까지 동일한 생명권을 가진다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고 믿음이다. 정자와 난자는 생명 탄생의 가능성만을 갖지만, 수정된 배아는 확정된 생명이다.
이는 보편 교회가 공유하는 인식이다. 주교회의 생명윤리위원회 위원장 장봉훈 주교는 이번 헌재 판결과 관련해 발표한 “‘배아의 인간기본권 부인’ 판결을 반대합니다”라는 제목의 성명에서 “수정란과 배아, 태아, 신생아, 영아 등은 성인이 되어가는 과정들로 그 사이에 본질적인 차이는 전혀 없다”고 했다. 또 “배아는 하느님이 정한 순리대로 수정란으로부터 성장한 것이며, 단순히 미숙하고 형체가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인간생명이 아니라고 단정하는 것은 참으로 가공할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법은 이 사회가 정상적으로 굴러갈 수 있게 하는 최소한의 잣대다. 이렇게 모든 이들이 스스로의 생명을 보존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 법이다. 법이 생명을 무시하면, 사회는 무너진다. 법은 최대한 인간 생명을 수호하는 입장에 서야 한다. 앞으로 수많은 배아들이 실험실에서 연구재료로 죽어가고 버려질 이 통탄할 일에 대한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법을 집행하는 사람도, 채 피어나지 못하고 죽어갈 배아도 모두 인간이다. 모든 인간은 배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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