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시아 향기가 더욱 짙게 스며드는 6월의 아침이다. 한국의 가톨릭 신자가 512만명으로 전체 인구 대비 10%를 넘었다. 경사스런 일이고 하느님의 엄청난 축복이다. 그러나 이중에는 상당수 냉담 교우가 포함되어 있으리라. 새로운 신자의 확보도 중요하지만 이들을 다시 교회로 돌아오게 하는 것이 더욱 시급한 과제이다.
신자들의 신앙 단계는 초보적인 기복 단계에서 갈등 단계를 거쳐 성숙한 단계에 이르기까지 여러 등급이 있다. 영세 후 신앙의 열매를 맺지 못하고 기복 단계에서 시들어 버린 나의 주변의 냉담 교우 이야기부터 시작하자.
A교수는 레지오 활동도 열심히 하고, 성당 건축기금도 100만 원 이상의 거금(?)을 내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냉담하고 말았다. 궁금하여 그 이유를 알아보니 기도도 하고 주님께 헌금도 많이 바쳤는데 그해 사랑하는 아들이 대학 입시에 떨어졌다는 것이다. 이분의 신앙은 전형적인 ‘기복 단계의 신앙’이라 볼 수 있다. 우리 주변에는 이처럼 주님의 축복만을 갈구하다 그것이 성취되지 않으면 하느님을 불신하고 냉담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B라는 친구는 10여 년을 성당에 다녔는데 몇 해 전부터 세상일이나 취미 생활 때문에 주일 미사에 자주 빠지고 있다. 그 이유로 본당신부님의 강론은 들을 것이 없고, 봉사자들의 거만한 태도 또한 마음에 들지 않아 ‘준냉담’ 상태라고 솔직하게 나에게 말하였다. 이 같은 사람은 ‘씨뿌리는 사람’의 비유에서 보듯 신앙의 싹은 났지만 세상의 가시 넝쿨인 유혹 때문에 신앙이 자라지 못하는 모습이다. 이럴수록 이들은 신부님과 교회에 불만이 많고 하느님과의 만남보다는 세상의 모임을 중시하는 정말 미지근한, 우리가 흔히 말하는 ‘나일론 신자’의 전형이다.
C자매는 주일 미사에 한 번도 빠진 적이 없다. 봉사활동도 여기저기 참여한다. 그러나 집에서의 기도 생활이나 성경 공부에는 아직도 별 관심이 없고 적극적이지 않다. 겉으로 보기에는 상당히 열심한 신자인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본인은 주일 미사에 참례치 않으면 불안하기 때문에 의무적으로 참례한단다. 그러나 이 자매는 가정의 어려움이 닥칠 때는 주님께 매달려 열심히 기도드린다. 드물게 주님의 평화와 위로를 받지만, 참된 마음의 평화는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갈등 단계의 신자 모습이다. 조금만 노력하면 성숙한 신앙 단계로 나아가리라고 생각한다.
D형은 성숙하고 모범적인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나는 레지오 활동을 통해 그를 만났는데 언제 어디에서나 누구에게나 베풀고 보살피는 사람이다. 한 번은 그의 창고에 불이 나 그의 전 재산이 불길에 타버려 모두가 망연자실하고 있는데, 그가 갑자기 사라져버렸다. 알고 보니 그는 성당의 감실 앞에서 재산은 날렸지만 아직 육신은 살아 있음에 감사하는 눈물의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그 뒤 그의 재산은 주님께서 충분히 보충해주어 오늘도 부족함 없이 잘 살고 있다. 가끔 술을 너무 좋아하는 등 인간적인 취약점도 보이지만 주변에서는 흔히들 그를 ‘작은 성인’이라고 부른다. 그의 몸에서 주님의 향기가 나고 있다. 이 단계야말로 우리가 가야할 성숙 단계의 신앙이 아닐까.
앞의 형제나 자매 이야기처럼 신앙은 그의 학식이나 연륜과는 별개이며, 그의 재산이나 세상적인 권력과는 더욱 거리가 멀다. 세상의 것을 많이 채울수록 주님께서 들어갈 공간은 그만큼 줄어들기 때문이다. 주님과 일치하는 성숙 단계의 신앙인은 결코 하루아침에 탄생하지 않는다. 세상에 노력 없이 공짜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성숙한 신앙은 무수한 세상적인 번민과 갈등 앞에서 때로는 주님을 원망하고 좌절도 하다가, 결국 주님께 의존하여 주님의 귀중한 말씀을 자각하고 체험한 사람들이다.
주일미사만으로 신앙은 결코 성장치 않는다. 자신의 신앙을 업그레이드 하려면 주님이 초대하는 여러 가지 풍성한 잔치에 의도적으로 참여하여 주님의 도움을 청하여야 한다.
나는 신구약 성경 공부, 말씀의 묵상인 렉시오 디비나(성독),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성령 세미나, 봉사자가 되기 위한 꾸르실료 교육 등은 신앙 성장의 필수 과목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모두가 바쁘다고 ‘내일 할 것’이라고 미루고 있다. 주님이 주시는 선물(present)은 내일이 아니고 오늘 현재(present)인데도 말이다. 누구에게나 내일은 있다. 그러나 그것은 아무도 모른다. 내일은 나의 날이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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