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닮았다.
길이 100m, 폭 64m. 주어진 공간을 벗어날 수 없다. 전·후반 90분. 시간도 제한돼 있다. 더 경기하고 싶어도, 그만두고 싶어도 내 뜻대로 할 수 없다. 철저히 게임의 법칙에 따라야 한다. 게다가 이 게임에서 반칙은 절대 허용되지 않는다. 자칫하면 레드카드, 퇴장 명령을 받을 수 있다. 오직 순수한 땀이 허용될 뿐이다.
이제 ‘축제를 위하여’라는 의미를 가진 월드컵 공인구 ‘자블라니’, 그 공이 한편의 축제 드라마를 만들어낸다. 혼자서는 불가능하다. 너와 나, 우리가 함께 어우러져야만 완성되는 드라마다.
심판의 호각소리가 울렸다. 전반전이 시작됐다. 선수들은 종횡무진(縱橫無盡)이다. 호랑이가 중원을 누비듯 그렇게 포효하며 뛰어 다녔다. 선수들의 몸에서 땀이 뚝뚝 떨어졌다. 그렇게 긴장감이 팽팽하던 전반 7분, 골 넣는 수비수 이정수가 천금같은 선제골을 터뜨렸다. 감독과 선수 모두 환하게 웃었다. 그리고 한데 뭉쳐서 환호했다. 그 모습에 국민들도 행복해 했다.
그 행복 뒤로 허정무 감독이 지난 1월 월드컵 출사표를 던지며 말한 ‘호시우보’(虎視牛步)가 오버랩됐다. 직역하면 호랑이처럼 보고, 소처럼 걷겠다는 뜻이다. 호랑이가 먹이를 노리는 것처럼 날카롭게 상황을 판단하되, 마음은 조급하게 먹지 않고 황소처럼 우직하게 목표를 향해 한걸음씩 내딛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이다.
선수들은 허 감독의 지휘 하에 하나가 됐다. 그리고 천천히 목표를 향해 걸었다. 그리고 이제 그 목표 실현의 장에서 맘껏 뛰고 있다. 마키아벨리(Niccolo Machiavelli)는 “뛰어난 지도자는 단지 뛰어난 재능만으로 사람들을 이끌어가지 않는다. 지도를 받는 사람들로 하여금 ‘우리들이 없으면 안된다’고 생각하게 한다”고 했다. 허 감독은 선수 개개인의 능력을 최대한 이끌어 냈다. “내 마음 알아달라”는 식의‘다가오라 형’ 설득을 거둬들였다. 먼저 허리 숙이고 다가갔다. 분열과 갈등을 치유하고, 팀을 하나로 만들었다.
우리는 과연 호랑이처럼 냉철하게 보고, 소처럼 우직하게 걷고 있는가. 하느님의 가르침을 정확히 볼 줄 알면, 걸음이 흔들리지 않는다(시편 37,31 참조). 그 우직한 걸음으로 누가 1000걸음을 가자고 하면, 2000걸음도 가 줄 수 있다(마태 5,41 참조).
문제는 걸음의 방향이다. 먹이를 바라보는 호랑이의 눈으로, 앞을 정확히 보아야 한다. 똑바로 보지 못하기 때문에 바로 걷지 못한다. 흐리게 보면, 삶은 진창으로 떨어진다. 바로 보고, 바로 걷지 못하면 이 삶의 게임에서 이길 수 없다.
신앙인으로서 올바로 보고, 올바로 서고, 우직하게 걸어야 한다. 늘 나에게 주어지는 하느님의 손짓이 있는데,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릴 필요가 없다. 이를 맹자(孟子)의 말을 빌려 달리 표현하면 ‘존심양성’(存心養性)이다. 하느님이 태어날 때부터 심어주신 본래의 마음을 잘 보존하고, 하느님이 그 마음 속에 심어 주신 본성을 잘 키워 나가야 한다. 그러다 보면 하느님 나라에의 참여라는 뜻밖의 선물을 받을 수 있다.
전반전이 끝났다. 선수들이 천천히 운동장을 빠져 나왔다. 숨이 턱에까지 찬 모습이다. 열심히 뛰었다. 사력을 다했다. 붉은색 유니폼은 땀과 흙으로 범벅이다.
1:0이다. 이기고 있다. 하지만 아직 경기는 끝나지 않았다. 지금까지 잘한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 게임은 계속된다. 삶은 계속된다. 마무리가 중요하다.
잠시 동안의 휴식시간이 끝나고…. 후반전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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