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그 정신과 기쁨이 온 세계를 단비처럼 골고루 적실 때 이 땅이 하느님의 나라를 닮아 가겠지요』
하느님의 역사 속에 동티모르를 부활시키려는 움직임이 지난 3월 4일부터 3일간 방콕에서 있었다. 「제3차 아시아-태평양 동티모르 연대회의」로 이름 붙여진 이 회의는 타이 공안당국의 외국인 참석자 전원체포 협박과 비밀유지를 위한 회의 장소의 수시변경 등 갖가지 어려움으로 예정시간을 훨씬 넘긴 저녁 7시에야 간신히 열릴 수 있었다.
관광객으로 위장(?)한 긴장 속의 입국수속, 아무도 마중 나오지 못한 썰렁한 방콕 공항, 집을 떠나기 직전에야 통보받은 회의 장소를 혼자서 찾아가는 두려움….
이 모든 불안과 초조가 물러가고, 17개국에서 모인 60여 명의 참석자들은 만남의 기쁨으로 충만해 어우려졌다.
말레이시아에서의 제2차 회의를 열어보지도 못하고 정부가 동원한 방해꾼들에 의해 쫓겨나고 연행되는 신세였던 사람들이 한자리에서 함께 모일 수 있다는 그 자체가 위로가 되고 축하해야 할 일이었다.
1975년 인도네시아의 침공과 그 이후 지금껏 이어지고 있는 저항운동의 과정에서 70만 인구 중 20만 명이 희생된 이 비극에 섬에 대해 인권과 평화 정의를 실현하고자 하는 보편적인 열망이 집약된 모임이라 참석자들은 뜨거운 열기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이 모임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한 일본인 참석자의 제의로 지난해 선종한 「일본 정의평화협의회」의장이었던 소마 주교를 기념하는 시간을 가졌던 것이다. 70, 80년대 우리나라의 반독재투쟁을 국제사회에 알리는 데도 상당히 기여한 바 있는 소마 주교의 동티모르 민중들을 위한 활동은 그 정신을 기리는 이들에 의해 끊임없이 부활하고 있었던 것이다. 자리에 함께 했던 사람들은 민중의 고통을 함께 나누는 삶은 죽어도 다시 사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으며 기쁨으로 차오르기도 했다.
태국정부에 의해 격리돼 있다 마지막 날에야 겨우 회의장에 발을 들여 놓을 수 있었던 루디스(25)씨를 비롯한 7명의 동티모르인들은 그들을 바라보는 이들과 애틋한 눈길을 나누기도 했다.
『우리가 바라는 삶은 단지 함께 할 수 있는 평화로운 삶입니다』『우리는 다만 우리의 말로 우리의 얘기를 할 수 있길 바랄 뿐입니다』
20여년 자신들의 말을 잃어버리고 살아온 동티모르인은 50여 년 전 우리 민족이 염원했던 바와 비슷한 부활의 꿈을 꾸고 있었다.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에서 동티모르의 독립을 위해 싸우고 있는「동티모르 구제협의회」아지오 페레라(45) 회장은 『정의를 위한 일에 가장 용감할 수 있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인들』이라며 『한국교회가 겪었던 비슷한 고통을 겪고 있는 이웃의 삶에도 눈을 돌려 해방과 부활의 기쁨을 함께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이번 회의 참석자들 중에는 자신의 전문 직업이나 성별과 나이에 관계없이 그야말로 국경을 넘어서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일본에서 귤을 생산하는 농부이자 가정주부이기도 한 진은「일본 동티모르 모임」을 꾸려가고 있고, 호주에서 온 한 의사는 96년도 노벨평화상 수상자이기도 한 동티모르 딜리의 벨로 주교의 활동을 담은 비디오를 전 세계에 보급하며 동티모르의 부활을 희망하고 있었다.
이제는 가슴 떨리던 회의에서 돌아와 미챠라는 동티모르 출신 여학생의 맑고 깊은 눈동자를 가슴에 묻는다. 그는 또 한사람의 동티모르 청년과 나란히 서서 그들의 모국어인 테툼어로 폐회선언문을 낭독했었다. 처음 듣는 테툼어였지만 아름다웠다는 기억을 지울 수 없다. 그들의 뒤에 서 있던 선배 동티모르인들의 눈이 젖어들었던 것도 잊을 수 없다.
모두가 더 이상 개최되길 바라지 않는 제4차 회의는 2년 후 인도네시아에서 열기로 결정됐다. 지금으로서는 거의 실현 불가능할 것 같은 결정이지만 누가 알겠는가, 진실이 거짓을 이기고 정의가 죄악을 물리치는 승리의 순간이 훨씬 빨리 올 수도 있음을.
그래서 동티모르 수도 딜리에서 독립을 축하하며 대량학살과 억압으로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그 땅에 부활의 꽃이 돋아 날 수 있음을, 또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한 민족의 부활을 증거하는 증인이 될 수 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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