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서기를 안하고 사는 사람은 없다. 공중전화 앞에서도, 화장실 앞에서도, 버스정류장에서도, 계산대 앞에서도 반드시 줄을 서야만 한다. 결국 줄서기는 우리의 생활인 셈이다.
그런데 우리와 선진국과는 줄서는 방법이 다르다. 언젠가 한국여성이 미국 공중화장실에서 차례를 어겼다고 망신을 당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하지만 그 여성은 단지 우리식 줄서기를 했을 뿐이다.
우리는 화장실에 3개면 줄도 3줄로, 나중에 왔더라도 줄만 잘 서면 먼저 온 다른 줄 사람보다 일찍 들어갈 수 있다. 운 좋게 줄을 잘 섰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은 화장실이 3개라도 1줄로 서서 어느 곳이 비든지 온 순서대로 들어간다. 먼저 온 사람이 먼저 들어갈 뿐, 운이란 게 있을 수 없다.
그런가 하면 런던 주재 한 한국 외교관은 민원 때문에 관공서를 찾아가 10분쯤 기다리다 차례가 되어 담당자 앞에 앉았는데, 때마침 전화가 울렸다. 하지만 담당자는 전화를 안 받았다. 그래서 『전화부터 받으시죠』라고 했더니 그는 이렇게 말했다. 『아닙니다. 당신은 지금까지 기다렸는데, 누구는 전화 한 통화로 일을 끝낸다면 불공평하지 않습니까』
확실히 우리와는 다른 합리적이고 공정한 줄서기다. 그렇다고 우리의 줄서기 방법을 갑자기 바꿔버릴 수는 없다. 어쨌든지 우리 나름대로의 줄서기 문화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줄서기조차도 잘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줄을 잘 선다는 것」은 「질서를 잘 지킨다는 뜻」이다. 하지만 요즘은 그 뜻이 「요행」의 의미로 변질 돼버려 정치인들로부터, 하다못해 화장실 앞에서도 「줄을 잘 서야 한다」고 말한다. 요령을 부리거나 요행심을 갖고 운에 맡기는 식으로 줄서기를 하는 것이다. 거기다 특권의식을 가진 몇몇 사람들은 그나마 줄서기도 안하려고 한다. 그리고 그런 것이 통하는 나라가 바로 우리나라다. 진정으로 줄서기의 의미를 새겨 봐야 할 때다.
그럼 하느님 앞에서의 줄서기는 어떻게 이뤄질까. 분명 가장 합당하고 완벽한 방법으로 이뤄질 것이다. 하느님이 인정하신 의인의 길을 일편단심으로 가는 사람이 맨 앞에 서게 되는 줄서기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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